주변에 화사한 봄꽃이 만발하여 사찰이 조용하고 양지바른 곳에 잘 위치한 것 같다.
다시 돌아 나와 상산김씨 反思亭과 묘봉사도 둘러보았다.
몇 년 전에 정창교교장과 함께 이 반사정을 답사한 기억이 난다. 못을 지나 조금 내려가면 문화재자료 제306호형조판서 김준민 장군의 비각이 있다. 몇 년 전 천전초등학생을 인솔하여 이곳에서 정화사업을 한 기억이 난다. 형조판서 김준민비각을 뒤로하고 10여 년 전에 화재를 입어 다시 중건한 성전암으로 이동하였다. 이 마을은 장안마을 이라하는데 그 이유는 인조대왕이 세자시절 이곳에 와 있었기에 이 아래 마을을 장안 마을 이라고 한다.
성전암은 이마을에서 약1.5km정도 이지만 경사가 워낙 급해 차가 올라가기에 무리이지만 옛날에 한번 올라간 기억이 있어 1단을 놓고 오르니 겨우 올라갈 수 있었다.
사찰이 불이 난지 10여년이 지났는데 옛날과 다름없이 잘 중건하였다. 부처님께 삼배를 올리고 스님에게 이곳 성전암 유형문화재 350호 목조여래좌상이 어디에 있습니까? 하고 물으니 무량수전 안에 석가모니불상 우쪽에 있다고 하기에 다시 가서 보니 조그만 한 불상이 있다. 화재로 인한 상처는 손가락 끝이 조금 타 잘려 있었다.
높이60㎝, 폭43㎝의 나무로 만든 조그만 아미타불 불상이다. 이 불상은 1644년(인조22)에 조성되었다고 한다.
성전암은 879년(신라 헌강왕 5)에 도선국사가 창건한 절이다. 도선은 우리나라의 풍수지리산으로 해석하여 백두산의 정기가 백두대간을 타고 내려오다 한강 이북인 서울 삼각산에 한 지맥이 머물렀고 남강의 물을 끼고 있는 여항산에 와서 다른 한 지맥이 맺혔다고 보았다. 그리하여 도선은 이곳에 암자를 짓고 “성인이 살던 곳”이라는 뜻으로 『성전암』이라는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인조가 능양군(綾陽君)으로 있을 때 이곳으로 피신하여 국난타개를 위해 백일기도를 올린 뒤 왕위에 올랐다고 한다. 이절은 이것을 기념하기위해 인조각(仁祖閣)을 세웠으며 안에는 인조대왕지위(仁祖大王之位)라는 위패가 있다. 오늘 까지도 제향을 올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