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11.18. 취우정종회 임원 함안 대산에서 만나다
오늘은 소정 안준상 전종회장께서 은계 안국장 선생 문집 번역본 출판 기념과 동시에 홀로 계시는 수헌 안길상 씨와 갑작스레 사모님을 잃은 수강 안일중 형님을 위로코자 종회 임원진 9명이 모였다.
장소는 함안 대산면으로 하자는 소정의 뜻대로 안 병록 전부회장께서 점심 장소를 정하기로 하고 12시에 모였다.
나는 수강 형과 수헌 길상 씨를 모시고 송도교각을 건너 경찰 승전 탑에 이르러 차를 주차하고 승전 탑을 답사하였다.
승전 탑 전문을 읽어 보니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조국산하(祖國山河)가 피로 물든 동족상잔(同族相殘)의 비극인 6.25전쟁으로 인하여 전국토가 적의 수중에 떨어진 백척간두(百尺竿頭)의 위기에 처했을 때 경남과 전남북 지역경찰 6,800여명은 미군25사단과 연합작전을 세워 효과적인 전투를 펼침으로써 인민군 4개 사단의 남하를 저지하고 향토를 지켜내었다. 이것은 경찰대원들이 죽음을 불사하고 싸워서 이룬 혁혁한 전과로서 구국 경찰사(救國警察史)에 영원이 남을 일이다. 이러한 전공을 높이 현양(顯揚)하고 이들의 호국정신을 후대에 길이 전하기 위해 경남도민의 마음을 한데 모아 6.25전쟁 발발 60년이 흐른 오늘 그날의 투혼이 서린 전적지에 승전 탑을 세운다. 남강은 치열했던 전투를 증언하며 유유히 흐르고 조국위해 산화한 호국영령(護國英靈)들은 향 그런 풀꽃으로 피어나 우리의 옷깃을 여미게 한다. 2011년 7월』
승전 탑 외에 많은 조각상과 글을 둘러보고 인증사진을 남기고 안 병록 댁으로 가니 마산에서 오신 임원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미리 예약된 구혜리 본가식당으로 이동하여 식사를 하면서 은계선생에 대한 이야기. 종회 발전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고 식사를 마치고 용하 산으로 가면 간송정, 반구정으로 하여 문화재를 답사하면 어떠냐고 했더니 도로가 협소하여 차가 가기에 불편하므로 생락 하고 함안의 비경 송도다리로 가기로 하였다. 송도 옛 교각에서 주차하고 세찬 남강 물에 의해 형성된 함안의 비경 기암절경을 보면서 잠시 이야기를 하다 사진을 남기고 여기서 서로 헤어졌다. 우리3명은 독대로 가서 수헌 길상씨를 집에 까지 내려드리고 수강 형과 나는 사평 우(佑)자 8대조 선조의 묘역으로 갔다. 묘비명을 보니 『忠義衛 秋沙 順興安公 之 墓碣銘 幷序』라 적혀 있다. 다시 묘소로 올라가 8대조 佑선조, 6대조 仁國 선조, 5대조 錫寬從선조 묘에서 재배하고 내려 왔다.
진주로 가는 도중 법수면 우거리 노인정에 형님을 내려드리고 나는 군북면 이태준 박사 기념관으로 갔다.
이태준 기념관은 지난16일 개관 하였는데 옛 군북 철도 역사 자리에 대암 이태준 기념관을 세웠다.
몽골의 신의(神醫) 이태준은 경남 함안 군북 출신으로 근대적 의료 교육기관인 세브란스 병원 의학교를 졸업한 후 일제가 날조한 105인 사건이 일어나자 해외로 망명하였다. 중국을 거쳐 울란 바트로 에 정착하여 동의의국(同議醫局)이라는 병원을 개원하였다. 당시 몽골인 들의 70~80%가 감염된 전염병을 헌신적으로 치료하여 몽골황제의 어의(御醫)가 되는 등 몽골인의 두터운 신망을 받았다. 또한 중국과 몽골을 오가는 독립 운동가들에게 교통과 숙식을 제공하였고 독립운동 자금을 제공하거나 운반책임을 맡기도 하였다. 의열단에 가입하여 우수한 폭탄 제조기술자를 소개하는 등 의열(義烈) 투쟁을 지원하였다. 1921년 러시아 백위군 운게른 부대에 피체(被逮)되어 1921년 2월에 38세의 젊은 나이로 순국하였다. 1990년 대한민국 건국 훈장을 추서하고 2000년 몽골 울란 바트로 이태준 선생 기념관이 조성되었다.
전시관 내부와 그리고 동영상을 감상하고 이태준 선생 흉상도 둘러보고 방어산을 넘어 사봉으로 해서 집에 귀가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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