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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봉회 여행 문화유산 답사기(‘24.11.23~24)

雲山- 2024. 11. 26. 15:14

삼봉회 여행 문화유산 답사기(‘24.11.23~24)

삼봉회는 매년 1회 이상 실시하는 행사로 시기가 늦은 것은 각자 회원의 개인 사정 때문이다.

장소는 경상북도와 충청북도 일원의 문화유산을 답사하기로 하였다.

23일 오전 630분에 진주에서 마산 성길 친구댁에 차를 주차하고 성길 차로 판상부부, 성길 부부, 우리 부부 6명이 칠서휴게소에서 부산에서 오는 친구 8명과 합류하여 아침 식사를 하고 제일 먼저 문경 도립공원 문경새재로 출발하였다.

주차장에 차를 정차하고 수시로 운행하는 전동버스를 타고 영화 촬영세트장 앞에서 하차하였다. 이곳은 24년 전 전에 조령산 등산을 하면서 제3 관문, 2관문, 1관문까지 다녀온 기억이 난다.

 

문경새재는 경상북도 문경시 문경읍 문경새재도립공원에 있는 백두대간의 조령산 마루를 넘는 재이다.

1974년에 지방기념물 제18호이며, 198164일에는 도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

예로부터 교통과 국방의 요충지로 문경새재 길은 영남에서 한양으로 가는 최단 거리였다.

새재 또는 한자어로 조령(鳥嶺)이라고도 하는데, 이 말은 새도 날아 넘기 힘든 고개라는 데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임진왜란 뒤에 제 1관문 주흘관, 2관문 조곡관, 3관문 조령관(사적 제147) 을 설치하여 국방의 요새로 삼았다.

우리 일행은 먼저 영화세트장을 관람하고 제2 관문까지 도보 하기로 하였다. 지름 바위를 지나 돌담 성을 쌓은 그곳까지 가다 다시 돌아왔다. 성길 친구는 제2 관문까지 다녀와 우리보다 조금 늦게 도착하였다. 옛날 제3 관문에서 제1 관문까지 산행하면서 보았던 조선시대에 출장을 가는 관리들에게 숙··의를 제공했던 조령원터, 도적들이 숨어 있다가 지나는 사람들을 덮쳤다는 마당바위, 조선시대 구 경상감사가 신 감사에게 업무를 인수인계 해주던 교귀정이 있다. 또 조선 후기에 세워진 것으로 추정되는 산불 도심(산불 조심)’이 적힌 표지석도 보았던 기억이 생각난다.

우리 일행은 제1 관문 주흘관을 나와 하늘재 식당에서 점심을 먹었다.

 

다음 코스는 충주호에서 청풍호 크루즈 배를 타기 위하여 충주 청풍호 크루즈 청품 수상 나루에 도착하니 오늘 운행은 끝났다고(오후3) 하여 다시 오늘 숙소인 수안보 상록호텔로 돌아와 호텔 숙소에 여장을 풀었다. 저녁식사를 하고 일찍 잠이 들었다.

아침 6시에 호텔 온천장에서 목욕하고 아침 식사 후 10시경에 속리산 법주사로 이동하였다.

법주사에 들어가기 전에 정이품송 문화유산을 맞아 차를 옆에 주차하고, 답사였다.

보도판 기록을 보면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세조는 재위 10년 음력 2월 요양을 목적으로 온양, 청원을 거쳐 보은 속리산을 방문한다. 말티재를 넘어 속리산으로 가던 중 길목에 있는 소나무에 임금이 타는 가마인 연()이 걸릴 것 같아 연 걸린다고 하자 신기하게도 늘어져 있던 가지가 스스로 올라갔다고 한다.

돌아가는 길에는 근처에서 갑자기 비가 와서 일행은 이 소나무 아래서 비를 피하였다고 한다,

세조는 올 때는 신기하게 나를 무사히 지나도록 하더니 이제 갈 때는 비를 막아주니 참으로 기특하도다

하면서 이 소나무에서 정이품의 품계를 하사하였다고 한다.

그 후부터 이 소나무를 연거랑이 소나무(연괘송:輦卦松), 연송(輦松), 정이품송(正二品松), 이라고 불렀으며 인근 마을은 군사들이 머물렀다고 하여 진()터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수령은 600~800. 수고 165m. 흉고둘레 5.3m로 추증한다고 한다.

 

이어 조금 더 가면 보은 속리산 법주사에 도착하게 된다. 차를 주차장에 주차하고 법주사까지 거리는 약 1.2km, 도보로 시간은 15분 정도 소요된다. 우리 일행은 법주사 입구부터 울창한 숲속을 거닐면서 좋은 공기 속에서 마음껏 힐링을 하면서 가니 법주사 일주문을 지나 법주사에 도착하였다.

법주사(法住寺)는 충청북도 보은군, 속리산에 있는 절로서 대한불교 조계종 제5교구 본사이다. 2018, '산사, 한국의 산지 승원'이라는 이름으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었다.

역사를 보면 공민왕도 세조 임금도 찾아온 명찰이다.

법주사는 신라 진흥왕 14(553)에 의신조사가 창건하였으며 의신조사(義信祖師)가 천축(天竺, 印度)에 갔다가 백 나귀에 불경을 싣고 와서 절을 지을 터를 찾아다니는 길에 흰 노새가 지금의 법주사 터에 이르러 발걸음을 멈추고 울었다고 한다. 의신조사가 노새의 기이한 행적에 걸음을 멈추고 주변을 둘러보니 아름다운 경치에 비범한 기운도 느껴져서 그곳에 절을 지은 후 절 이름을 인도에서 가져온 경전 즉, 부처님의 법이 머물렀다는 뜻에서 법주사라 하였다는 전설이 있다.

문화유산은

사적 제503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대한민국의 유일한 고식(古式) 목탑인 팔상전(국보 제55)을 비롯해, 다양한 문화재를 가지고 있다. 국가지정문화재 국보만 3점이고, 보물은 13, 충북 유형문화재가 20, 문화재자료 1점 등이다. 이외에도 법주사 일원은 명승 제61호이며 또한 천연기념물도 2점이 있다.

국보인 보은 법주사 쌍사자 석등 (報恩 法住寺 雙獅子 石燈)은 신라 석등 중 뛰어난 작품 중의 하나로 조성 연대는 성덕왕 19720년으로 추정되고 있다.

높이가 3.3m로 널따란 8각의 바닥도 위에 사자 조각이 올려져 있다. 사자 두 마리가 서로 가슴을 맞대고 뒷발로 아랫돌을 디디고 서서 앞발과 주둥이로는 윗돌을 받치고 있는 모습이다.

.국보인 보은 법주사 팔상전 (報恩 法住寺 捌相殿)은 석가모니의 일생을 여덟 장면으로 구분하여 그린 팔상도(捌相殿)를 모시고 있는 5층 목조탑이다. 법주사를 처음 만들 때 세워진 것으로 전해지며 임진왜란 때 불에 타 사라진 것을 선조 38(1605)부터 인조 4(1626)에 걸쳐 벽암 대사가 주관하여 다시 세웠다.

팔상전은 두 단의 석조 기단 위에 세워져 있고 기단 네 면의 중앙에는 돌계단이 있다. 이 기단과 계단은 통일신라 때의 것이다.

. 팔상전 옆에는 금동 미륵 대불이 웅장하게 세워져 우리를 압도한다.

높이 33m, 무게 160여 톤으로 청동 입상(立像)으로는 세계 최대 규모인 속리산 법주사의 미륵 대불이 황금 옷을 갈아입고 금동 미륵 대불로 다시 태어났다.

사용된 금은 100에 이르며 총 불사 비용은 7억 원에 이른다고 한다.

다음은 법주사 대웅전에 들려 부처님께 삼배를 올리고 법주사를 뒤로하고 왔던길로 뒤돌아 회원들과 함께 속리산 산채나물 비빔밥을 맛있게 먹었다.

 

 

다시 나와 말티고개 전망대로 이동하였다.

속리산 말티재는 전망대를 설치하여 조망하기에 아주 적당한 곳이다. 12번 휘어지는 말티고개 도로를 조망하는 곳으로 위에서 아래로 사진을 남겼다. 경남 함양에 있는 지안재, 오도재와 함께 뱀처럼 휘어진 도로가 유사하다.

 

오늘 마지막 답사지는 경북 구미시 박정희 장군의 생가를 방문하였다. 마침 오늘이 월요일이라 출입을 막아 들어갈 수는 없으나 주변을 답사하였다.

이곳 생가를 20여 년 전에 답사한 적이 있다.

경상북도 기념물 박정희대통령생가(朴正熙大統領生家)

경상북도 구미시 박정희로 107 (상모동, 박정희대통령생가) 이며 이 건물은 우리나라의 제59대 대통령을 역임한 박정희(朴正熙, 1917-1979) 대통령이 태어난 가옥이다.

19171114일 아버지 박성빈(朴成彬) 공과 어머니 백남의(白南義) 여사의 52녀 중 막내로 태어나서 구미초등학교와 1937년 대구사범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살았던 곳이다.

 

생가 앞에는 새마을 운동 조각 동상 과 새마을 역사 등이 기록된 보도판이 있다. 그리고 동쪽편으로 가면 박정희 대통령 동상이 있고 박정희 대통령 역사 자료관 건물이 있는데 안에 들어갈 수 없어 아쉬웠다.

마지막 돌아오면서 박 대통령 동상 앞에서 단체 사진을 촬영하고 부산팀과 창원팀으로 서로 이별 인사를 나누고 집으로 돌아왔다.

이번 답사에 준비한 안기준 내외분과 2일동안 차량 운행에 수고한 안병오, 박성길 친구에게 감사 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