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유적답사

진주향교 대전문화유적 답사

雲山- 2019. 5. 2. 17:12
‘19.05.01.진주향교 유림
 대전 문화유적 답사
  5월1일 아침 8시에 진주시외버스 터미널 옆에 집결하여 버스2대, 대곡 방향에서 1대, 반성 방향에서 1대가 각기 출발하여 산청휴게소에서 160명의 회원이 모두 모였다. 이곳에서 진주향교 이방남 전교와 유도회 박종식 회장의 인사를 통해 오늘 대전시 문화유적 답사의 취지를 설명하였다. 성석기 사무국장께서 오늘의 일정을 설명한 후 대전시 대덕구 회덕향교로 출발하였다. 11시30분경 대전광역시 대덕구에 있는 회덕향교에 도착하였다. 향교의 위치는 정말 깊은 산골로 들어가는 느낌을 준다. 대도시에 있으면서 숲이 병풍처럼 둘러 쌓여있고 좌청룡 우백호를 갖는 명당자리에 위치해있다. 회덕향교는 조선 세종(재위 1418∼1450) 때에 처음 지었으나 임진왜란으로 불에 탄 것을 선조 33년(1600)에 다시 짓고 순조 12년(1812)에 수리하였다. 대전광역시문화재자료 제5호로 지정된 「회덕향교」 대성전은 정면 3칸·측면 3칸의 겹처마 맞배지붕 건물로, 내부 바닥에는 마루를 깔았고, 천정은 연등천정이다. 중국 5성(五聖 : 공자·안자·증자·자사·맹자)의 위패를 중앙에, 송조 4현(宋朝四賢 : 주돈이·정호·정이·주희), 한국 18현(韓國十八賢 의 위패를 동서 양쪽 벽에 배향하고 있다. 회덕향교 전교님을 비롯하여 임원진이 친절히 저희 진주 유림들을 안내하여주신다, 160명 유림들은 대성전 앞에 모여 정옥영 유림의 집례로 봉심(奉審)을 마치고 집사 분정 유림과 헌관은 기념촬영을 하였다.
  점심시간이 되어「한국 효 문화진흥원」 옆에 있는 장수두부촌에서 점심식사를 하였다.

















식사 후 바로 옆에 「한국 효 문화진흥원」으로 이동하여 자유로이 관람을 하였다. 「한국 효(孝) 문화진흥원」의 주소는 대전광역시 중구 뿌리공원로 45이고 전화는 042)580-9000 이다. 효(孝)는 우리 민족의 아름다운 전통문화유산으로서 5천년 역사 속에 면면히 이어져왔고, 자손만대 우리 후손들에게 계승되어야 할 소중한 가치인 것으로 진흥원에서는 미래의 주역이 될 어린이와 학생 등을 대상으로 효 문화 체험교육을 통해 효(孝)가 무엇이고, 어떻게 하는 것이 바람직한지 등을 일깨워주고 있다. 또한 다양한 효 문화 프로그램을 통해 청소년과 여성을 비롯한 어르신에게도 핵가족화 등 사회 변화에 따른 효 패러다임의 변화 모습을 새롭게 인식시켜 나가고 있다. 아울러 효를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시킨다는 목표 아래 전국에 산재한 효자비와 열녀문을 비롯하여 설화, 민속, 민담 등 효 관련 유·무형의 자산을 전수조사 하고 있다.














조금 걸어가면 만성교(萬姓橋)가 있다, 만성교(萬姓橋)를 지나면 「한국족보박물관」이 있고 산 전체에「뿌리공원」을 조성하였다. 「뿌리공원」 의 주소는 대전 중구 뿌리공원로 79 이고 전화는 042-581-4445이다. 뿌리공원은 민과 관이 유기적인 협조체제로 조성된 전국 유일의『효』테마공원으로서 자신의 뿌리를 되찾을 수 있는 성씨상징의 조형물 설치 및 “효”주제 테마공원이다. 충효사상 및 주인정신을 함양시키는 교육공원으로 다양한 “가족단위시설 및 이벤트 행사”가 마련된 가족공원 과 천혜의 “자연경관”을 배경으로 한 도심 속의 자연공원 이 잘 조성되어 있다. 몇 년 전에 이곳 뿌리공원에 왔지만 다시 한 번 더 찾고 싶었던 곳이다. 전국 244성씨로 조성되어 있으며 우리 순흥 안가는 104번으로 제일 정상 바로 밑에서 우측에 있다. 우리 순흥안씨의 작품 및 상징을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책모양의 작품은 학문을 숭상한 선조의 예로서 우리 모두 책을 가까이하여 마음의 양식을 쌓고 진리가 있음을 깨 닳으며 선현의 뜻을 되새기고 학문을 넓혀 나아가 미래를 창조하는 원동력과 인류사회에 널리 공헌 하자는 뜻을 담았다. 상징은 한자의 안(安)자를 형상화한 것이다. 뜻은 천지인(天地人)을 바탕으로 하여 위의 원은 우주를 향하여 뻗어가는 우리의 미래상을 제시하였고 가운데 타원형은 오십만 종친이 한울타리에서 결속 숭조목족하자는 뜻이며 아래 일(一)은 생명의 모태인 땅을 상징하고 있다』. 우리나라 성씨 1,000명 이상인 성씨가 153성 858본관으로 되어 있으나 2015년의 인구조사에 의하면 5,582성 36,744본관인 것으로 나타났다. 아무튼 뿌리공원은 모든 사람들에게 자신의 뿌리를 알게 하여 경로효친사상을 함양시키고 한겨레의 자손임을 일깨우기 위하여 세계 최초로 성씨를 상징하는 조형물을 세운 충효의 산교육장임을 확인 할 수 있었다. 돌아 나오면서 입구에 있던 한국족보박물관에 들렸다. 특이한 것은 시대별 족보와 우리나라 조선왕조 27대 왕의 자손계보를 보니 드라마에 나오는 역사의 인물들을 대충 이해 할 수 있었다.











모두 버스에 승차하여 은진 송 씨 독특한 문중문화와 어우러져 어느 지역에서도 보기 드문 문중문화가 오늘날에도 살아 숨 쉬고 있는 동구 계족로 452(용전동) 박물관을 연상시키는 이사동에 도착하였다. 이곳은 은진 송씨가 510여 년간 유교사회가 이루어져온 은진 송씨의 집성촌이 되고 집장촌이 되어 왔다. 은진 송 씨의 단일 혈통의 분묘 1070기(2010년 조사)가 자연 친화적으로 계장되어 있으며, 제반석물로 웅장하게 치장되고 있는바 이와 같이 완벽하게 보존된 집장치가 국내에서는 물론 세계 어디에서도 찾아 볼 수 없는 곳이다. 은진 송씨는 5곳의 당우와 16곳의 재실이 있는바 이곳에는 2곳의 재실 월송재(시도 문화재자료 제31호), 추원재(시도 문화재자료 제33호)와 3기의 묘역 송요년(1429-1499)묘역(시도 기념물 제44호), 송응서 묘역(시도 기념물 제45호), 송남수 묘역(시도 기념물 제46호)로 지정되어 있기 때문에 유적 역사 연구의 충분한 문화적 가치가 있다. 비석에는 당대 유명 인사들이 비문을 지었고, 명필들이 비문을 썼기 때문에 금석학 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 이사동에 도착하여 먼저 은진 송 씨 재실인 절우당(節友堂)에 집결하였다. 오늘 대전광역시 동구청장께서 직접 오셔서 앞으로 은진 송 씨 묘역을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하겠다는 계획을 설명하신다. 전국에서 이러한 묘역은 조선왕조묘역 다음으로는 이렇게 1000여기나 되는 묘역을 원래 모습으로 보존한 곳은 없다는 설명을 들었다.

절의당(絶義堂) 齋室 뜰 옆에 송재수 선생의 시비가 세워져 있다

宋潭 偶吟 송담이 시를 읊다

宋柟壽 詩 1537-1626 文臣

 

石嶺春猶早(석령춘유조) 돌 재에 봄은 아직 이른데,

沙村雪未消(사촌설미소) 강마을에 눈은 녹지 않았다.

鵑啼溪上月(견제계상원) 시내에 달이 오르자 두견새 울고,

人斷柳邊橋(인단유변교) 버들 다리에서 人跡은 끊어졌네.

野老偏愛國(야노편애국) 농부가 무척 나라를 사랑하는데,

山戎久據遼(산융구거요) 山戎들 오래 요동 땅 차지하고 있네.

西往健兒盡(서왕건아진) 서쪽으로 건장한 청년들 모두 가고나니,

閭巷日蕭條(여항일소주) 마을 거리는 날마다 쓸쓸해지네.

 

바로 옆에 있는 이사동 고분군 시도 기념물 제46호 송담공 산소날(송남수宋柟壽)의 묘역(墓域)으로 이동 하였다. 산소날 이란 용어가 어려워 물었더니 날은 산능선 줄기를 말하는 것이라고 한다 송남수는 조선 중기 시인으로 잘 알려져 있으며, 묘역은 18세기(1707년) 건립되어 원형이 잘 보존되어 있다. 상설제도가 잘 정비되어 있으며, 문인석, 묘표 등 석물의 예술성이 뛰어나 조선시대 묘제 및 석조예술품의 연구 자료로 가치가 높다. 양주호 회원과 나는 묘역 제일 위편에 까지 가서 보니 정말 왕족 묘역과 같이 만들어 져 있음을 확인했다. 다음 답사지 는 보물 제209호 인 동춘당(同春堂)이다. 대전 대덕구 동춘당로 80 (송촌동)에 있는 동춘당 (同春堂)은 송준길(1606∼1672)선생의 별당(別堂)인데 시간이 모자라 가지 못하고 오늘 답사는 이것으로 마치고 4시30분에 진주로 귀가 하였다.


















오늘 답사지 마지막 은진 송 씨 묘역까지 친절히 안내하여주신 회덕향교 임원님께 감사드린다. 오후 6시30분경에 진주 향담 식당에서 저녁식사를 하고 집으로 귀가하였다. 오늘 진주향교 유도회 사무국장께서 세밀한 계획으로 아무 차질 없이 160명 회원이 무사히 답사를 마쳤으며,
 5월 논개제 제전위원장을 맡은 이방남 전교께서 행사에 적극협조를 바라는 인사로 행사를 마무리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