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중

‘19.10.27~29. 시제 참가기

雲山- 2019. 11. 1. 15:57

‘19.10.27~29. 시제 참가기

<시조단,은덕재, 시흥, 부석사답시>

1027일 아침 6시 출발하여 함안정류소 옆 주차장에 차를 주차하고 안광부 종원을 만나 720분 발 마산에 8시에 도착하였다. 마산에 있는 화중 종원이 도착해 함께 3명이 825분 발 안동으로 출발하였다. 11시경에 안동에 도착하여 정류소 음식점에서 점심을 먹고 안동에서 1130분발 영주행 버스를 승차하여 12시경에 영주에 도착하였다. 영주에서 택시를 대절하여 부석사로 출발하였다.

순흥면을 지나 단산면으로 부석면에 도착하니 차가 밀려 나아가지를 못하고 있었다.

마침 26일부터 113일 까지 영주 사과 축제기간이라 장소가 부석사 앞이다 보니 차가 계속 밀려 오늘 집사 분정에 차질이 될까 걱정이 되기도 하였다. 마침 기사께서 빨리 갈 수 있는 길로 해서 부석사 뒤편 에 있는 출입문에 도착하였다. 부석사는 이번에 3번째 답사를 한다. 십여 년 전에 법수중학교 교사들과 함께 그리고 3년 전 一中형 과 致榮씨 차로 부석사와 영모재에 다녀왔다.

부석사를 다시 답사하고 싶은 것은 이 사찰은 소백산 자락에 위치하여 부석사에서 내려다보면 그 아름다운 풍광이 천하에 제일경이며 또한 고찰인 동시에 지난해에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7개 사찰중 하나이다.

7개 사찰은 양산통도사, 영주부석사, 안동봉정사, 보은법주사, 공주마곡사, 순천선암사, 해남대흥사 이다.

 

부석사는 한국 화엄종의 근본 도량으로 신라 문무왕 16(676) 의상대사가 왕명을 받들어 창건하고 화엄의 큰 가르침을 펴던 사찰이다. 일주문을 지나 천왕문을 지나고 안양 루를 거쳐 무량수전에 닿는다. 기둥하나, 문창살 하나에도 천년의 세월이 살아 숨쉬며, 우아한 자태를 뽐낸다. 신비로운 설화와 무량수전을 비롯한 수많은 국보 보물 등 문화재가 자리하고 있는 곳! 부석사는 영혼을 담은 내면의 세계를 들여다보는 사바의 극락이기도 하다.

부석사는 다음과 같은 국보가 있다.

무령수전(無量壽殿국보 제18), 소조여래좌상(塑造如來坐像국보 제45), 무량수전 앞 석등 국보 제17), 조사당(祖師堂 국보 제19), 부석사조사당벽화 국보 제46, 이다.

부석사라고 하는 이름은 이곳 무량수전 옆에 부석바위가 있는데 아래 위가 붙지 않고 떠 있다 하여 뜬 돌, 부석(浮石)이라는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선묘설화에 의하면 의상(義相)이 당나라에서 공부 할 때 동주에 있는 신도의 집에 머무르게 되었는데 신도의 딸 선묘가 의상을 사모하게 되었는데 하지만 의상의 굳은 의지에 선묘는 영원히 스님의 제자가 되어 공부와 교화, 불사에 도움을 드리겠다는 원()을 세웠다. 훗날 의상이 떠난다는 소식에 미리 준비한 용품을 담아 해안으로 달려갔으나 이미 의상이 떠난 후였다. 선묘는 가져온 함을 바다로 던지며 배에 닿기를 기원하고 용으로 변하여 대사를 모시고 불도를 이루게 해달라는 주문을 외우고 바다에 몸을 던졌다. 신라에 귀국한 의상은 중생을 교화하던 중 676(문무왕16) 태백산의 한 줄기에 절터를 발견하였으나 이미 다른 무리들이 살고 있었다. 이 때 갑자기 선묘룡이 나타나 큰 바위를 공중에 들었다 놓았다하니 이에 놀란 무리들이 굴복하고 모두 의상의 제자가 되어 불사를 도왔다. 돌이 공중에 떴다고 해서 절 이름을 부석사(浮石寺)라 지었다. 그 부석은 무량수전 서쪽 암벽 밑에 있으며 선묘룡은 무량수전 앞 석등 밑에 뭍여 절의 수호신이 되었다. 19675월 신라오악학술조사단이 무량수전 앞뜰에서 이 설화를 뒷받침하는 5m 가량의 석룡 하반부를 발견한 바 있다.

 

이러한 전설이 있는 사찰을 다시 답사하게 되어 너무나 마음이 설레 인다.

나는 무량수전 본존으로 들어가 서쪽에서 동쪽으로 바라보고 있는 아미타부처님 앞에서 삼배를 올리고 소원을 빌었다. 그리고 다시 제일 뒤편에 있는 조사당으로 올라갔다.

조사당은 의상대사의 영정을 모신 곳이다. 그런데 특이한 것은 조사당 선비화(祖師堂 禪扉花) 안내판 글이 있어 읽어보니 정말 신기(神奇)하다.

선비화(禪扉花)의 학명은 골담초 이다. 부석사를 창건한 의상대사가 중생을 위하여 짚고 다니던 지팡이를 이곳 조사당 처마 밑에 꽂았더니 가지가 돋고 잎이 피었다고 한다, 1300년 이상 조사당 처마 밑에서 비와 이슬을 맞지 않고서도 항상 푸르게 자라고 있어 보는 이로 하여금 신비감을 주고 있다.

일찍이 퇴계 이황 선생이 부석사를 찾아와 이 선비화를 보고 시를 짓기도 하였다.

 

擢玉森森倚寺門(탁옥삼삼의사문) 빼어난 옥 같은 줄기 빽빽이 절문에 비꼈는데

僧言卓錫化靈根(승언탁석화령근) 지팡이 신령스레 뿌리내렸다 스님이 일려주네

杖頭自有曹溪水(장두자유조계수) 석장의 끝에 혜능선사 조계의 물 닿아 있는가.

不借乾坤雨露恩(불차건곤우로은) 천지의 비와 이슬 그 은혜를 빌리지 아니 했네

 

조사당을 마지막으로 답사하고 일주문 까지 내려오니 영주시 사과축제와 함께 부석사를 찾는 인파가 수 없이 몰려오고 있다.

행사장 앞에 와서 목이 말라 영주 막걸리를 한잔하니 물이 좋아 그러한지 막걸리 맛이 아주 시원하다. 순흥면으로 가는 시내버스를 타고 오늘 머물 순흥 모텔에 도착했다.

조금 있다 추원 단으로 가서 저녁식사를 하고 집사 분정 준비를 하였다.





























문숙공 종원 대표 哲模, 秉七, 文植 종원과 소윤공 대표 正源, 光俊 종원과 함께 순흥시조단 2:(典理正郞公), 3:得財(郞中公), 4:希諝 (判典公), 6:(文敬公), 6:(祭酒公). 의 집사 분정을 지난해와 같이 돌아가면서 분정 하였다.

그리고 은덕재 5密直提學公(대사헌공),6文貞公(문숙공),7文簡公(소윤공) 분정을 하고 시흥시제 분정도 의논하였으나 내일 아침에 결정하기로 하였다.

대사헌공은 미리 알려주어야 하므로 화중, 광부 와 의논 하였다. 良度公, 靖肅公은 세 문중(문숙, 소윤, 대사헌)이 함께 의논하기로 하고 大司憲公, 淮陽公, 判官公, 參奉公,龍安公 집사분정을 하고 종원들에게 미리 알려주었다.

 

3파종회 양도공 추원 단에서 잠을 자고 아침에 일어나니 모기한테 많이 물렸다. 다음에는 모기약을 살포할 것을 건의해야겠다. 29일 아침 6시에 기상하여 7시에 식사를 하고 1030분부터 양도공 선조부터 시제를 차례로 다 마치니 1시경이다. 점심식사를 하고 2시부터 승차하여 함안 궁정식당에서 저녁 식사를 하고 나는 진주로 돌아오니 오후 9시경이 되었다 이번 시제는 23일간 정말 체력적으로 해가 갈수록 기력이 떨어진다. 그래도 선조님 시제를 마치니 마음이 뿌듯하고 긍지를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