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유적답사

‘22.08.04. 거창군 문화유산 답사

雲山- 2022. 8. 5. 11:59

‘22.08.04. 거창군 문화유산 답사

9시에 雨堂(李忠鍊)이 나의 집까지 와 毅菴(朴亨濟)댁으로 이동, 셋이서 거창 박물관으로 출발하였다.

오늘은 특별히 밀양 미리 벌 민속박물관장이 초청하였다.

이곳 거창박물관에서 2022년 특별전으로 미리 벌 민속박물관 자료중 선조의 삶, 가구에 담다라는 주제로 전시회를 개최하여 초대를 받은 것이다.

먼저 거창박물관을 처음 왔기에 박물관 전시 유물을 먼저 관람하였다.

이곳 박물관은 처음이다. 학예사와 관계직원께서 친절히 안내를 해준다.

박물관을 들어가기 전 정원에는 거창의 특징적인 암석이며, 이형석탑(異形石塔), 동자석(童子石), 송림사지 석조여래좌상(유형문화재 311)문화재 등이 전시되어 있었다.

박물관으로 들어가니 청동정병, 거창 둔 마리 벽화고분(사적239), 사슴뿔모양 잔, 금동보상입상, 백자편병, 등 역사 순으로 잘 전시 되어 있었다. 중간 중간 학예사가 설명을 해주어 오늘 우리가 갈 정온선생 고택, 명승지 수승대, 용암정 주변, 그리고 천연기념물 당산리 당송도 잘 사진으로 볼 수 있었다.

그 외도 민속자료, 선비의 학문자세, 학동이 공부하는 자세, 한약방 약조제, 베틀로 삼베옷을 짜는 모습, 전통악기를 다루는 모습이며 윤주하 선생, 곽종석 선생, 김면장군 의 활동상황이 잘 표현되어 있다. 특이한 것은 이곳 박물관에 대동여지도가 있어 학예사 에게 이곳에 전시 된 연유를 물었더니 거창읍 가지리 밀양박씨 문중(박성재)에서 보관하다가 거창 박물관에 기증하였다고 한다.

다시 박물관을 나와 별관2층에 전시된先祖의 삶 가구에 담다특별전으로 들어갔다.

거창박물관 초청 기획전의 일환으로 마련된 <선비의 삶. 가구에 담다>를 전시하였다.

미리 벌 민속박물관장 성재정 선생께서 보관중인 전통사회 사용한 옛 가구들을 통해 삶에 대한 가치관 등 선조들의 정신문화를 알아보는 좋은 기회였다.

전시물은 경상남도 유형문화재인 표암 강세황선생 행서(行書) 팔곡병(八曲屛), 사랑방, 안방, 부엌 등의 특징적인 가구들을 종류별로 전시하였다.

 

마지막으로 관람 소감을 간단히 쓰고 오늘 우리들이 계획한 문화재 답사지로 출발하였다. 수승대와 용암정 주변이 명승지로 지정되었는데 수승대는 여러번 답사하였으므로 생략하고 용암정으로 가면서 우선 점심 식사를 초내 식당에서 하였다.

오늘은 며칠 전부터 비가 내려 옛 안의 삼동 중 가장 아름다운 계곡인 원학동 계곡물이 세차게 흐르고 있었다.

명승 용암정 일원 (居昌 龍巖亭 一圓)으로 가는 길은 찾아 가기에 무척 어려웠다.

이곳은 위치는 경남 거창군 북상면 농산리 63-0 일원이며 은진임씨 용암공파종중에서 관리 하고 있다

용암정1801년 조선 후기 용암(龍巖) 임석형(林碩馨)이 경남 거창군 월성계곡 위천변의 자연경관이 뛰어난 큰 바위에 지은 정자와 위천의 계류, , 암반 등이 어우러져 아름다운 경관을 이루고 있는 조선 시대 전통격식을 갖추고 있는 별서이며, 주변 자연환경과 자연스럽게 어우러져 배치된 전통경관과 역사문화 환경이 복합된 자연유산으로 가치가 뛰어난 명승지이다.

용암정에는 반선헌(伴仙軒), 청원문(聽遠門), 환학란(換鶴欄)이라 쓴 현판이 걸려 있다.

용암정 명승지에서 나오니 이곳에서 3km 거리에 정온 선생이 처음 이곳으로 은거 했다는 모리재 (居昌 某里齋)표시판이 보인다. 주소는 북상면 농산리 673번지이다.

모리재는 병자호란(1637) 때 청나라와 끝까지 싸우자고 주장한 정온(鄭蘊, 1569~1641)이 낙향하여 죽을 때까지 숨어서 살던 곳에 세운 서원 형태의 재실로서

모리는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어딘지 모른다는 뜻이다. 정온은 모리 재를 엉성하고 볼품없는 집이란 뜻으로 구소(鳩巢)’라고 하였다고 한다. 또한 이곳은 고사리를 캐어 먹고 굶어 죽었다는 고사를 생각하여 채미헌(採薇軒)’이라고도 불렀다.

정온(鄭蘊) 선생께서 말년을 보낸 그곳으로 갈려고 하는데 도로가 너무 협소하고 경사가 심해 차가 더 나아가지 못해 아쉽지만 포기하고 당산리 당송 천연기념물을 찾아갔다.

 

천연기념물 제410호 인 거창 당산리 당송 (居昌 棠山里 棠松)의 위치는

거창군 위천면 당산리 331번지이다. 높이가 18m, 둘레는 4.05m 정도인 소나무이다. 수령(樹齡)600여 년 정도로 추정한다. 나무껍질은 거북 등 모양으로 갈라져 있으며, 밑동 부분에는 도끼 자국이 남아있고, 남쪽 가지가 부러졌으나 아름다운 모양을 유지하고 있다.

이 나무는 나라에 큰 일이 있을 때마다 --소리를 내어 미리 알려주는 신령스러운 나무라 하여 영송(靈松)이라 부르기도 한다. 특히 1910년 국권을 빼앗긴 일, 1945년 광복, 1950년 한국전쟁 때에는 몇 달 전부터 밤마다 소리를 내어 울었다고 전해진다.

마을에서는 매년 정월 대보름마다 이 나무에 동제(洞祭: 마을을 지키는 신에게 올리는 마을 사람들의 공동 제사)를 지내고 있으며 마을 사람들은 모임을 만들어 특별히 보호하고 있다.

거창 당산리 당송은 민속적·생물학적 자료로서의 가치가 높아 천연기념물로 지정하여 보호하고 있다

 

다시 국가민속문화재인 거창 동계종택 (居昌 桐溪宗宅)으로 이동하였다.

위치는 경남 거창군 위천면 강동113 (강천리)이다.

조선 중기의 문신 정온(15691641)이 태어난 집으로, 후손들이 순조 20(1820)에 다시 짓고 정온의 신위를 사당에 모셔 오늘에 이르고 있다.

솟을대문에는 文簡公 桐溪 鄭蘊之門(崇禎紀元)이라 쓰여 있고 안으로 들어서면 ''자형의 사랑채가 있고, 사랑채 안쪽으로 ''자형의 안채가 자리하였다. 안채의 뒤쪽에 따로 담장을 두르고 3문을 설치한 후 사당을 세웠다.

 

동계종택 (桐溪宗宅) 옆집 건물은 반구헌(反求軒)건물이 있다.

반구헌은 조선 헌종·철종년 간에 영양현감을 지낸 야옹 정기필(鄭夔弼)선생이 기거하던 주택이다. 야옹(野翁)선생은 목민관 재임 시 청렴한 인품과 덕행으로 명망이 높았으며 관직을 사직하고 고향으로 돌아왔으나 재산과 거처가 없자 당시 안의현감의 도움으로 이 반구헌을 건립하였다고 한다.

반구헌이란 이름은 스스로 자신을 뒤돌아보고 반성한다는 의미인 "反求於諸心"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오늘 더운 날씨에도 문화재를 사랑하는 우리들은 또 다음을 약속하고 거창군 관내 문화유산과 밀양 미리벌 민속박물관 소장 [선조의삶, 가구에 담다]문화재를 머릿속에 기록을 남기면서 진주로 무사히 귀가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