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2일 우당. 의암 .운산 셋이서 합천군 문화유산을 답사하였다.
1.국가민속문화유산
합천 묵와고택 (陜川 默窩古宅)
소 재 지 경남 합천군 묘산면 화양안성길 150-6 (화양리)
시 대 조선 선조
이 고택은 가야산에서 뻗어 내린 해발 1,000미터가 넘는 산속에 자리잡고 있다. 조선 선조 때에 선전관(宣箋官)을 역임하였던 묵와(默窩) 윤사성(尹思晟, 1557~1619)이 건립하였다고 전하며, 윤사성의 10대손인 독립운동가 만송(晩松) 윤중수(尹中洙, 1891~1931)의 생가이다.
문간채의 가운데에 있는 솟을대문을 들어가면 ‘ㅜ’자형으로 동향한 사랑채가 있다. 사랑채의 우측에는 중문채가 있으며, 중문채를 들어서면 ‘ㄱ’자형의 안채가 있다. 안채 마당을 지나면 사당이 위치하고 사당은 사랑채 옆면의 협문을 이용하여 진입한다.
산간에 집터를 잡아 양반집을 짓는다는 것은 드문 사례인데, 임진왜란 이후 전쟁의 참상을 경험한 선비들이 난을 피해 은거하고자 했던 생각과 풍수적 이상향을 찾고자 했던 조선 중기 선비들이 집터 선정에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인다. 또한 성리학적 규율을 반영하여 자연적인 경사를 이용하였고, 짜임새 있는 건물 배치와 남녀 생활공간과 동선을 엄격하게 구분하고 있다. 특히 사랑채의 높은 누각식 마루는 조선시대 양반 주택의 권위와 품격을 잘 표현하고 있으며, 기둥과 대들보 등 목부재의 견실한 맞춤과 세련된 형식은 조선 중기 양반집의 특징을 잘 보여 준다.
2.경상남도 문화유산자료
합천 육우당 (陜川 華陽里 六友堂)
소 재 지 경상남도 합천군 화양안성길 140-10 (묘산면)
육우당은( 炳九, 炳來, 炳殷 ,炳周, 炳斅, 炳旼)육분을 뜻을 모아 위손(胃孫) 석우(錫佑)가 재종숙질과 더불어 논이 하여 육우당을 건립하였으며 1960년대까지 서당으로 활용하였으며 유림의 거두이자 한학자인 춘산(春山) 이상학(李相學)과 성암(誠菴) 윤석희(尹錫熙)와 애국지사 윤중수가 육우당에서 학문을 배워다. 육우당 건물배치는 동향으로정면 5칸 측면 3칸으로 내부 가구조각이 특이하고 팔작지붕에 납도리집으로 상량기문에 상원(上元)갑진(甲辰) 3월13일 임오(壬午)사시(巳時)입주(立柱) 동월(同月)28일정유(丁酉)미시(未時)상량(上梁)으로 되어있고 연목 및 기와 번와를 2004년에 보수한 것이며 육우당(六友堂),돈목재(敦睦齋),정양헌(靜養軒) 편액은 우당(愚堂) 유창환(兪昌煥)1870∼1935선생 글씨이다.
3.천연기념물
합천 화양리 소나무 (陜川 華陽里 소나무)
소 재 지 경남 합천군 묘산면 화양리 835외 1필
합천 회양리의 소나무는 해발 500m 정도 되는 곳에 위치한 화양리 나곡마을의 논 가운데 서 있으며 나이는 500년 정도로 추정(지정일 기준)된다. 높이 17.7m, 둘레 6.15m의 크기로 가지는 2.5∼3.3m 높이에서 갈라져 다시 아래로 처지 듯 발달하였는데 그 모습이 매우 독특하고 아름답다. 나무 껍질이 거북이 등처럼 갈라져 있고 가지가 용처럼 생겼다 하여 구룡목(龜龍木)이라고도 한다.
연안 김씨의 후손들이 전하는 바에 의하면 광해군 5년(1613)에 연흥부원군 김제남이 영창대군을 왕으로 추대하려 한다는 모함을 받고 역적으로 몰려 3족이 멸하게 되자 김제남의 6촌벌 되는 사람이 도망와서 이 나무 밑에 초가를 짓고 살았다고 한다. 마을 사람들은 이 나무를 마을을 지켜주는 나무로 여기고 오랫동안 보호해 왔으며, 민속적·역사적·생물학적 자료로서의 가치가 크므로 천연기념물로 지정하여 보호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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