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산

월아산 장군봉 산행

雲山- 2019. 4. 13. 08:50

‘19.04.11.월아산 장군봉(482m)
 오늘도 집사람이 노래교실에 가도록 태어주고 나는 월아산 장군봉으로 갔다. 10시20분경 주차장에 주차하고 오른 쪽으로 하여 두방사를 답사하고 정상에서 다시 왼편으로 하산하여 성은 암을 답사하고 청곡 사로 이동하여 청곡 사 를 답하기로 계획하고 출발하였다.
몇 년 전에는 집사람과 함께 갔는데 이제는 집사람은 산에는 전혀 갈 수 없다. 허리 수술 이후 처음에는 조금 차도가 있었지만 완쾌되지 않고 별 효과가 없는 것 같다.이제는 집 사람과 함께 가기는 무척 어려워졌다. 나도 무릅 관절이  좋지 않지만 지팡이 두 개를 의지하면서도 산에는 가고 싶다.


특히 월아 산은 그리 높지도 않고 남녀노소 누구나 갈 수 있는 아주 적합한 산이다. 전번에 집사람과 같이 갈 때 하산하면서 내가 한 바퀴 돌기로 했는데 다시 두방사, 체육장, 청곡사, 갈림길로 내려와 오늘은 산 전체를 일주 하려고 출발하였다.
 제일먼저  청곡사 학영지(鶴影池)를 지나면서 사진을 남겼다. 이어서 일주문을 지나면서 은초선생이 섰다는 일주문 과 양쪽 기둥에 쓰인 글을 다시 기억하고 싶어 적었다.
『歷千劫而不古요 亘萬歲而長今』이라 『일천 겁을 지나도 예가(옛날) 아니며, 일만세를 뻗쳐도 언제나 지금이다』.


일주문을 들어서서  스님의 염불 소리를 들으면서 오른쪽으로 올라 체육장, 두방사, 정상으로 가는 삼거리에서 잠시 휴식을 하였다.  정상으로 가지 않고 두방 사를 답사하기 위해서 오른쪽으로 계속 가다보니 두방 사로 들어가는 입구가 막혀 아래로 내려가서 다시 두방 사에 들어갔다. 이곳 사찰은 무량수전이다, 부처님을 모시지 않고 비로자나불을 모신 절이다. 그래서 무량수전(無量壽殿)이라 현판이 걸려 있다. 들어가서 절을 하려고 했으나 스님이 혼자 염불을 하는데 감히 들어 갈 수가 없었다. 이곳 두방 사에는 유형문화재가 있다.
시도유형문화재 제200호 두방암 다층석탑 (杜芳庵 多層石塔)  이며 위치는 경남 진주시 문산읍 상문리 이다.
두방암에 자리하고 있는 탑으로, 원래 법륜 사에 있던 것을 임진왜란으로 절이 없어져 이곳으로 옮겨 놓은 것이다. 푸른빛이 도는 점판암을 이용해 만든 것으로 일명 청석탑(靑石塔)이라 한다.
기단 부(基壇部)의 바닥 돌은 탑을 옮겨 세울 때 새로 시멘트로 만들었고, 각 기단의 맨 윗돌에는 연꽃을 새겨 장식하였다. 탑신부(塔身部)는 부서지기 쉬운 돌의 특성상 상자모양의 몸돌과 얇은 지붕돌을 교대로 높게 쌓아 올렸다.
다른 청석 탑에 비해 보존상태가 매우 좋은 편으로 청석 탑이 유행하던 고려시대 전기에 세운 것으로 추정된다. 사찰 내를 답사하고 다시 내려와 정상으로 가는 길을 따라 올라 갔다. 조금 경사가 삼하지만 쉬어 가면서 오르니 12시경이다. 장군봉 정상에서 진주시와 저 멀리 바라보니 전망이 아주 좋으며 앞에 산의 높이와 위치를 사진으로 전시해 두어 쉽게 알 수 있다.


월아 산은 표고 482m로 1986년 3월6일 도시자연공원으로 지정(건설교통부 고시 제93호)됐다. 지명에서 나타나듯이 달과 연관이 깊은 산이다. 산에서 달이 떠오르는 그 모습이 천하일품장관을 연출하는데 이를 두고 아산토월(牙山吐月)이라고 부른다. 월아 산은 낙타등과 같이 쌍봉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북쪽 봉우리는 국사봉, 남쪽봉우리는 장군봉 이라고 부르고 있다. 이 두 봉우리 사이로 솟은 해돋이는 진주8경중 제7경이다. 산세는 부드럽고 아늑하여 무리 없이 남녀노소 누구나 산행이 가능하고 주변의 아름다운 풍경을 만끽 할 수 있다. 임진왜란 때 충장공(忠壯公) 김덕령(金悳齡)장군이 목책성(木柵城)을 쌓고 왜적을 무찌르는 본영으로 삼았다는 역사적 사실이 한시대의 기록으로 묻히고 있어 안타깝기 그지없다. 예부터 금산, 진성, 문산, 주민들이 가믐 때 기우제를 지내던 곳이며 산의 동쪽에는 비봉형(飛鳳型)이 있고 서쪽에는 천마형(天馬型)이 있어 전해오는 전설로는 산 동쪽에는 재상을 낳고 서쪽에는 장군을 낳는다고 한다.
이곳에 표시한 산 이름과 높이를 열거하면 다음과 같다.

   
왼쪽부터 고성 거류산(570m), 통영 미륵산(698m), 고성 연화산(528m), 사랑도 지리산(398m), 사천시 와룡산(798m), 남해 호구산(619m), 망운산(786m), 금음산(481m), 전남 고흥 팔영산(608m), 하동 금오산(849m), 전남 광양시 가야산(497m), 백운산(1218m), 진주 가좌산(116.8m), 진주 망진산(172m), 하동 황장산(948m), 로 기록 되어 있다. 이정도로 많은 산을 전망할 수 있는 산이다. 여기서 사진을 한 장 남기고 북쪽 끝자락에 국사봉으로 하산하는 곳과 청곡사로 하산하는 갈림길이 있다. 여기서 계속 내려오면 성은 암으로 가는 옆길이 있다 약350m를 가면 조용한 암자가 있다. 들어가니 스님이 차를 타고 내려가신다. 내부를 볼 수 없고 해서 이곳에서 가져간 김밥을 먹고 잠시 쉬었다. 아주 옛날에 이곳을 한번 들린 적이 기억난다. 한참 내려가니 청곡사가 나온다. 나는 국보 가 있는 靈山會上殿 앞에 배낭을 벗어 놓고 사찰 전체를 답사하였다. 청곡 사는 전통사찰 제74호로 금산면 갈전리 18번지이다. 신라 헌강왕  5년(879) 도선 국사가 창건한 사찰로서 창건 동기는 남강 변에서 청학(靑鶴)이 날아와 서기(瑞氣)가 충만함을 보고 절터로 정하였다. 고려 말 우왕 때 삼총 대사가 중건하였으나 임진왜란 때 불탄 것을 선조 광해 연간에 복원한 것으로 경남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이다.
특히 이 사찰에는 문화재가 많다.
▸청곡사영산회괘불탱(국보 제 302호)
▸청곡사목조제석천∙대범천의상(보물 제1232호)
▸청곡사 목조석가여래 삼존좌상(보물 제1688호)
▸청곡사 목조지장보살 삼존상 및 시왕상 일괄(보물 제1689호)

  【목조제석천∙대범천의상(보물 제1232호)】
▸청곡사삼층석탑(경상남도유형문화재 제5호)
▸청곡사대웅전(경상남도유형문화재 제51호)
▸청곡사괘불함(경상남도유형문화재 제26호)
▸청곡사영산회상도(경상남도유형문화재 제349호)
▸청곡사업경전(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139호) 등이 있다.
 국보는 문이 잠겨 볼 수 없고 대웅전에 들려 부처님께 삼배하고 업경 전에 있는,  목조제석천∙대범천의상(보물 제1232호)과 삼층석탑, 法具四物을 답사하였다
.법고사물이란 ?
○梵鐘:중생을 제도하는불구 대중을 모이게 하거나 때를 알리기 위하여 울리는 종이다.
○法鼓:법요식에 쓰는 것으로 예불 때와 법식을 거행할 때 이 북을 친다. 축생의 부류를 제도하기위해서 이며
○木魚:수행자가 졸지 말고 도를 닦으라는 뜻에서 물고기 모양으로 만들었다.
절에서 염불이나 독경, 예불, 공양 등의 때를 알리기 위해 만든 나무로 된 모양의 북
○雲版: 아침저녁 예불을 드릴 때 사용하여 특히 하늘을 날아다니는 새와 같은 동물을 위해 치는 의식법구이다.
 청곡 사를 뒤로 하고 내려오면서 학영지 아래 부모은중경(父母恩重經) 비가 있어 읽어보니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① 어머니 품에 품고 지켜 주는 은혜[懷耽守護恩], ② 해산날에 즈음하여 고통을 이기시는 어머니 은혜[臨産受苦恩], ③ 자식을 낳고 근심을 잊는 은혜[生子忘憂恩], ④ 쓴 것을 삼키고 단 것을 뱉아 먹이는 은혜[咽苦甘恩], ⑤ 진자리 마른 자리 가려 누이는 은혜[廻乾就濕恩], ⑥ 젖을 먹여서 기르는 은혜[乳哺養育恩], ⑦ 손발이 닳도록 깨끗이 씻어주시는 은혜[洗濁不淨恩], ⑧ 먼 길을 떠나갔을 때 걱정하시는 은혜[遠行憶念恩], ⑨ 자식을 위하여 나쁜 일까지 짓는 은혜[爲造惡業恩], ⑩ 끝까지 불쌍히 여기고 사랑해 주는 은혜[究意憐愍恩] 이다.
아! 오늘 산행도 좋았지만 두방사, 청곡 사에 있는 문화재를 보니 잘 보존하고 지켜야함을 다시 한 번 깨 닳았다. 그리고 부처님 오신 날이 얼마 안남아 벌써 연등을 달아 부처님의 탄생을 축복 하고 있다. 오늘 산행은 1시 30분경에 주차장에 도착하여 3시간동안 약7km를 운동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