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13.경북 예천군 문화유산 답사
아침 8시에 박대섭, 박경묵, 강태중 교장, 양기석박사, 나와 5명이 진주KBS 앞에서 모여 경북 예천군으로 출발하였다. 오늘 차량은 양기석 박사께서 수고하기로 하였다. 도착 예정시간을 3시간을 생각했는데 예천 도정서원에 도착하니 11시였다.
1.도정서원(道正書院)
소재지는 경북 예천군 호명면 강변로 417 (황지리) 이며 1640년에 건립하였으며 조선 중기의 문신 정탁(鄭琢, 1526~1605)과 그의 셋째아들 정윤목(鄭允穆, 1571~1629)의 위패를 봉안하고 있다. 1697년(숙종 23)에 지역 사림과 후손들의 정성을 모아 강당 채를 건립하여 도정서원으로 승격하였다. 1866년(고종 3)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일부분이 훼철되었으나 1997년 동재, 서재, 전사청, 누각을 새로 지어 복원하였다. 서원 내의 약포사당 (藥圃祠堂)은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142호이며 정면 3칸, 측면 2칸 규모의 맞배지붕 건물이며 강당 채는 정면 4칸, 측면 2칸 규모의 홑처마 지붕의 건물로 전면에 난간을 둘러 누각 형식으로 지었다. 서원 앞에 있는 읍호정(挹湖亭)은 1601(선조 34)년에 건립한 정자로 가파른 경사면을 깎아 강 바로 앞에 세웠다.
정탁은 자는 자정(子精), 호는 약포(藥圃)·백곡(栢谷)으로 1558년(명종 13) 식년문과에 급제한 뒤 《명종실록》 편찬에 참여하였고 진하사(進賀使)로 명나라에 다녀왔으며 예조판서·형조판서·이조판서 등을 지냈다. 임진왜란 당시에는 몽진(蒙塵)하는 선조를 호종하였으며, 곽재우.김덕령.이순신 등을 천거하여 전란 중에 공을 세우게 하였으며, 1589년 옥중의 이순신(李舜臣)을 극력 신구(伸救)하여 죽음을 면하게 하였다.
1603년 영중추 부사에 올랐으며, 호종공신(扈從功臣) 3등, 서원부원군(西原府院君)에 봉해졌다. 저서로 《약포집》 《용만문견록(龍灣聞見錄)》 등이 있다. 정윤목의 자는 목여(穆如), 호는 청풍자(淸風子)·죽창거사(竹窓居士)이다. 조선 중기의 이름난 성리 학자이자 글씨에 뛰어나 초서(草書)의 대가로 활약하였다.
서원 내를 둘러보고 아래쪽 강변으로 둘레길 을 만들어 놓았는데 다음 글이 표시판에 쓰여 있다.
『초립동을 업어 건네준 정탁
정탁은 말년에 고향으로 돌아가 내성천에서 낚시를 즐기곤 했다. 어느 해질 무렵 초립을 쓴 아이가 정탁에게 낮추어 말하며 자신을 업어 강을 건너 달라하였다. 그 초립동의 눈에 정탁은 그저 초라한 촌 노인으로 보였던 것이다. 그는 아무 말 없이 아이를 업고 강을 건넜다.
건너편 기슭에 거의 다다를 무렵 아이가 “요새 정탁 선생은 무슨 일로 소일 하던가” 하며 묻자 정탁은 “낚시를 즐기다가 초립동을 업어 물을 건너 준답니다” 하고는 아이를 내려놓으니 이에 그 초립동이 아연실색하여 죽을죄를 지었다고 사죄했다 한다』 라 기록되어 있다.
조금 더 아래로 내려가니 또 표시판에 글이 쓰여 져 있다.
『마음의 소
선조 때 정승으로 발탁되자, 정탁은 스승인 조식의 문하로 떠나기 전 하직 인사를 올리러 갔다. 조식은 그에게 “자네를 위해 뒷마당에 소를 한 마리 매어 놓았으니 상경할 때 몰고 가거라” 하였다. 하지만 가보니 소가 없어 어리둥절 하자 조식이 말했다. “군은 언어와 이기가 날카로우니 날랜 말과 같다. 말은 빨리 가니 넘어지기 쉬운 것이니 꾸준하고 순한 것을 참작해야 멀리 갈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내가 군에게 소를 준다는 것일세.” 조식의 선물은 바로 마음의 소인 것이다. 정탁은 스승이 준 이 소를 타고 지내며 관직을 무난히 마쳤다고 한다.』
라고 쓰여 있다.
도정서원(道正書院) 을 뒤로 하고 예천 권씨 초간공파 종댁으로 이동하였다.
점심시간이 되어 예천읍내에 들어가 토방숯불갈비전문집에서 (054-654-7667)경북 예천 음식을 맛있게 먹고 국가민속문화재 예천 권씨 초간공파 종택으로 이동하였다.
2.국가민속문화재 제201호 예천 권씨 초간공파 종택 (醴泉 醴泉權氏 草澗公派 宗宅)
소재지는 경북 예천군 용문면 죽림리 166-3번지이다.
이 집은 낮은 뒷동산을 배경으로 경사진 대지 위에 동쪽을 향하여 위치하고 있다.
조선시대 전기 양반집으로 초간(草澗) 권문해(權文海)의 할아버지인 권오상(權五常)이 1589년(선조 22)에 건립하였으며 임진왜란 이전에 지은 주택으로 그 유례가 드물고 학술적 가치가 높다.
별당인 사랑채(보물 제457호)는 앞쪽에 돌출되어 있으며, 그 왼쪽 뒤로 ‘ㅁ’자형 몸채를 지어 별당과 연결하였다. 별당의 왼쪽에는 백승각(百承閣)이 별당을 바라보고 있고, 별당의 오른쪽 뒤로는 사당이 있다. 별당 앞쪽에도 행랑채 겸 대문채가 있었으나 임진왜란 때 소실되었다고 한다.
별당 전면에 높은 축대 및 대청에 난간이 설치되어 있어 배면으로 오를 수 있고, 사랑채 뒤로는 2칸의 날개 채를 달아 안채 행랑과 연결되어 자유롭게 이동이 가능하다는 특징이 있다. 사랑채인 별당이 대청 위주의 누각 식으로 지었고 안채에서는 건넌방에 비해 안방이 과도하게 강한 공간 위계를 가지며 행랑과 날개채 등을 통해 안채와 사랑채가 긴밀히 연결되어 있는 것은 조선 전기 접객 중심의 살림집에서 나타나는 특징이라고 할 수 있으므로 조선 전기 누각형 접객 건물의 흔적을 볼 수 있는 드문 사례가 된다.
국가 민속문화재 제201호 예천 권 씨 초간공파 종택 에는 「보물 878호 대동운부군옥책판 부고본」, 「보물 879호 권문해 초간 일기」, 「보물 457호 예천 권씨 초간종택 별당」, 「유형문화재170호 예천권씨 종가문적」 등이 보관되어 있다.
초간공파 종택 앞을 100m 쯤 걸어 나오니 기념물 제110호인 예천 죽림리 향나무가 있다.
이 향나무는 우리나라 중부 이남을 비롯해 울릉도와 일본 등에 분포하고 있으며, 상나무·노송나무로도 불린다. 이 나무는 강한 향기를 지니고 있어 제사 때 향을 피우는 용도로도 쓰이며 정원수·공원수로 많이 심는다.
예천 죽림리 향나무의 나이는 300년 정도로 추정되며, 높이 10m, 둘레 0.6m로 울향(鬱香)나무라고 불리고 있다. 전해져 내려오는 이야기에 의하면 권오상이라는 사람이 울릉도로 유배당했다가 돌아올 때 가지고 온 향나무로 이 마을을 개척할 때 연못가에 심었다고 해서 울향나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예천 죽림리 향나무는 오랜 세월 대수마을 주민들의 관심과 보살핌 속에서 지내온 나무로 생물학적 보존가치가 인정되어 기념물로 지정하여 보호하고 있다.
초간공파 종택을 나와 조금 가니 명승 제51호인 예천 초간정 원림 숲에 차를 세워두고 명승지를 관람하였다.
3.명승 제51호 예천 초간정 원림 (醴泉 草澗亭 園林)
소재지는 경북 예천군 용문면 죽림리 이다
초간정은 조선 선조 때 학자인 초간 권문해(1534~1591)가 오랜 관직생활과 당쟁에서 벗어나 자연을 즐기기 위해 고향으로 돌아와 창건한 정자로 맑은 계곡과 푸른 소나무림 사이의 암석 위에 위치하고 있다.
조선시대 사림의 은일(隱逸)생활과 무위자연(無爲自然)을 바탕으로 하는 선조들의 자연관을 보여주는 명승지로 바위를 휘돌아 흐르는 계류가 시원한 운치를 자아내는 등 경관적 가치가 크다. 이 명승지 안에 문화자료143호인 초간정(草澗亭)이 있다.
초간정은 초간 권문해(1534~1591)가 세우고 심신을 수양하던 곳이다.
조선 선조15년(1582)에 처음 지어진 이 건물은 임진왜란 때 불타버린 것을 중건하였으나 인조14년(1636)에 다시 불타는 등 수난을 거듭했는데 지금의 건물은 초간의 현손이1870년 중창한 것으로 기암괴석과 주변의 경관이 조화를 이루어 관광지로 각광을 받고 있다.
초간정과 명승지를 뒤로 하고 용문사로 이동하였다.
4.소백산 용문사(小白山 龍門寺)
소백산 기슭에 자리 잡은 예천 용문사는 통일신라 말 “두운선사”가 창건한 “두운암”이 그 모태이다.
동국여지승람에 “고려 태조가 후삼국 통일을 위하여 이 근처를 지나다가 두운대사의 명성을 듣고 방문하고자 절 입구에 이르니 바위 뒤에서 청룡 두 마리가 나타나 인도하였다”
라고 기록되어 있다. 두운선사의 법력과 불심에 감화된 태조 왕건은 칙명을 내려 용문사를 대대적으로 중창 불사하였고 고려 왕조 내내 잡역을 면제하고 공양미를 하사하는 등 국가적인 관심과 후원이 이어졌으며 , 숭유억불(崇儒抑佛)의 조선시대에서도 왕실차원의 지원과 불사가 끊임없이 이어진 국가적인 명성을 지닌 사찰이었다. 보물급 문화재인 “윤장대”를 비롯한 350여점의 성보 문화재를 보유하고 있는 용문사는 대한민국 역사와 한국불교사에 빠질 수 없는 큰 의미를 지닌 법보대찰(法寶大刹)이다.
먼저 용문사 성보유물관(聖寶遺物館) 으로 들어갔다. 이 성보유물관 안에는 많은 문화재가 있었다.
「보물 1445영산회 괘불탱」. 「보물 1330호 팔상탱 제4폭」 . 「보물 1644호 천불탱」. 「보물 145호 용문사 대장전」. 「보물 989호 용문사 대장전 목불좌상 및 목각탱」. 「보물729호 용문사 감역교시」. 「문화자료 제169호 용문사 자운루(慈雲樓)」 가 있었으며 사찰규모는 대단하였으며 특이한 것은 윤장대가 2대가 설치되어 있어 불전을 넣고 한번 돌려 보았다.
그리고 전시관 벽에 사가 서거정의 시가 있다
『용문사에 다시 오니
산 깊어 세속의 시끄러움 끊겠어라.
절에는 승탑(僧榻)이 고요하고
묵은 벽엔 불등(佛燈)이 타오르네.
외줄기 샘물소리 가녀리고
첩첩한 산봉우리 달빛을 나누고 있네.
우두커니 앉아 깊이 돌이켜보니
내 여기 있음조차 잊게 되누나.
四佳 徐居正 詩』
특히 용문사가 전하는 사찰음식 이야기는 호국불교의 용맹함을 보여준 용문사 사찰음식이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거치면서 승병들의 거점이자, 보급기지로 활약한 역사적인 근거가 남아 있다. “자운루(慈雲樓)”에서는 승병들의 짚신과 병기구 등 보급품을 직접 제작하여 보급하고 승병들과 백성들을 주먹밥과 죽, 비빔밥 등으로 구휼했다고 전해오고 있다.
보광명전(普光明殿)에 들어가서 부처님께 삼배를 올리고 나왔다. 용문사는 비구니스님이 있는 사찰이다. 오늘 가장 더운 날이라 자세히 답사하지 못하고 정문으로 내려오니 사찰을 수호하는 사천왕상이 좌우에서 우리를 내려 보고 있다. 속세의 사람들이 사찰에 들어 갈 때는 속세의 죄를 버리고 정숙하며 부처님께 귀의 하라는 것이다.
오늘 마지막 답사지인 석송령(石松靈)으로 이동하였다.
5.천연기념물 제294호 예천 천향리 석송령 (醴泉 泉香里 石松靈)
소재지는 경북 예천군 감천면 천향리 804외 7필 이다.
석평 마을의 마을회관 앞에서 자라고 있는 예천 천향리의 석송령은 나이가 700년 정도로 추정되며, 높이는 11m, 둘레는 3.67m이다. 나무는 밑동에서부터 여러 갈래로 갈라져 있어 전체적으로 우산모양을 하고 있으며, 곁가지의 무게를 지탱하기 위해 곳곳에 돌로 된 기둥을 세워 놓았다.
전하는 이야기에 의하면, 약 700년 전 풍기지방에 큰 홍수가 났을 때 석간 천을 따라 떠 내려오던 소나무를 지나가던 사람이 건져서 이 자리에 심은 것이라고 한다. 그 뒤 이 마을에 살던 이수목(李秀睦)이라는 사람이 ‘석평 마을에 사는 영감이 있는 소나무’라는 뜻으로 ‘석송령(石松靈)’이라는 이름을 지어 주었고, 자신의 토지 6,600㎡를 물려주고 등기까지 내주어 재산을 가진 나무가 되었다. 또한 고 박정희 대통령이 500만원을 하사한 일도 있다. 마을에서는 석송령의 재산으로 장학금을 조성하여 학생들에게 주고 있으며 매년 정월 대보름에 마을의 평화를 비는 제사를 지내고 있다.
예천 천향리의 석송령은 마치 사람처럼 재산을 가지고 세금과 장학금을 내는 등 세계적으로 그 예를 찾기 어려운 나무로 우리민족의 나무에 대한 생각을 엿볼 수 있는 문화적 자료로서의 가치가 매우 높아 천연기념물로 지정하여 보호하고 있다.
날씨가 갑자기 소나기가 내린다. 바로 앞에 찹쌀떡을 판매하는 가게가 있어 들어가 더위와 비를 피하면서 잠시 쉬었다. 찹쌀떡 10개에 1만원을 주고 5명이 맛있게 먹었다. 4시경에 진주로 출발하여 오후 7시경에 진주에 도착하였다.
이번 “문화재 사랑 모임”에서 더운 날씨에도 마다하지 않고 즐겁게 문화재를 찾아가서 확인하고 많은 것을 배웠다. 우리들은 더욱 더 문화재를 사랑하고 잘 보존해야 함을 많이 홍보하자고 약속하면서 다음 문화유산 탐방을 기다리며 서로 헤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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