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술발표회

‘19.9.20. 제42차 박약회 유교문화 학술대회 및 상주시 문화유산

雲山- 2019. 9. 21. 17:16

 ‘19.9.20. 제42차 박약회  유교문화 학술대회 및 상주시 문화유산
                
 아침7시50분 진주에서 경남 박약회 26명이 버스에 승차하여 상주시로 출발하였다.
오늘 박약회 행사는 1시부터 등록하므로 먼저 상주시의 문화유적지를 답사하기로 계획하였다. 10시10분경 상주시체육관 앞에 도착하니 상주시 문화유산 해설사 김금지씨가 기다리고 있어 함께 차에 승차하여 안내를 하였다. 오전시간에 상주시의 문화유산은 다볼 수 없고 3곳만 답사를 하였다. 먼저 상주시를 소개해 준다.
대한민국 중심에 위치한 상주시는 사통팔달의 편리한 교통망을 바탕으로 전국어디서나 쉽게 찾아와 관광 할 수 있는 곳이다.
백두대간의 등줄기에 해당하는 소백산맥이 병풍처럼 둘러쳐져 자연경관이 빼어나며 영남의 젖줄인 낙동강이 굽이쳐 흐르는 기름진 평야지대로 영남제일의 곡창지대이다.
그리고 통일신라시대는 9주에 속한 중심지이고 고려시대는 8목이었으며 조선시대는 경상감영(도청소재지)이 있었던 천년고도였다. 지금은 경상북도 조그만 상주시 이다
∇인구수는 100.947명이며 행정구역은 1읍17면6동4출장소가 있다.
∇상주시 상징물은 쌀. 곶감. 누에고치의 모양을 한 삼백(三白)을 상징하며
∇도시브랜드 슬로건은 꿈을 향한 새로운 도약의 중심도시이다.
 상주시 김금자 해설사는 먼저 천하 제 일경 경천대로 안내하였다
1.경천대(擎天臺)
낙동강 1300여리 물길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경치를 자랑하는 깎아지른 절벽과  신비를 간직한 천혜의 절경으로 “자천대(自天臺)”라 불렀으나 우담 채득기 선생이 이곳에 은거생활을 하면서부터 하늘을 떠받든다는 뜻으로 “경천대(擎天臺)”로 부르고 있다.
이곳의 풍광은 정말 아름답다. 낙동강이 굽이쳐 흐르고 이곳 경천대 절벽을 스쳐 굽이쳐 멀리 절벽 아래로 강물이 휘돌아 간다.


우뚝 선 바위벼랑 사이에. “대명천지 숭정일월(大明天地 崇禎日月)” 글을 새긴 경천대비(擎天臺碑)가 새겨져 있다, 이글의 뜻은 임진왜란 때 조선을 도운 명나라와의 의리를 지켜야 한다는 뜻이다.
벼랑 바위틈사이로 두 그루의 노송이 있는데  소나무 한그루는 버티다 못해 잎이 시들어 감이 안타 갚다.
경천대 조금 아래에는 낙동강물이 내려다보이는 무우정(舞雩亭)이 있다.
무우정(舞雩亭)은 병자호란 때 소현세자와 봉림대군이 청나라 심양으로 볼모로 잡혀갈 때 수행했던 우담 채득기선생이 관직을 마다하고 은거하며 학문을 닦던 곳이다. 경천대와 무우당은 풍광이 너무도 아름다워 명승지로 선정해도 충분한 가치가 있다고 여겨지는데 왜 선정되지 못했을까?  의아스럽다. 경천대를 뒤로 하고 도남서원(道南書院)으로 이동하였다.



































2) 도남서원(道南書院)

    
경상북도 상주시 도남동에 있는 서원으로 포은 정몽주(鄭夢周, 환원당 김굉필(金宏弼)· 일두 정여창, 회재 이언적(李彦迪), 퇴계 이황(李滉), 소재 노수신 (盧守愼), 서애 류성룡(柳成龍),  우복 정경세(鄭經世), 창석 이준(李埈) 등의 위패를 봉안하여 제향하고 있다.  
1606년(선조 39) 상주시 도남동에 창건되었으며 1676년(숙종 2) 임금으로부터 편액을 받아 사액서원이 되었다. 1797년(정조 21) 동·서재를 건립하였으며 이후 여러 차례 중수하였다. 1871년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훼철되었으나 1992년 지역 유림들이 힘을 모아 강당 등을 건립하였고 이어 동·서재를 지었다. 2002년부터 대규모의 복원이 이루어졌다. 
경내에는 도정사, 손학재, 민구재, 정허루, 장판각, 전사청, 영귀문, 고직사, 일관당, 입덕문 등이 들어서 있으며 해마다 음력 2월 8월 하정일(下丁日)에 위패를 봉안하고 있는 인물들에게 제사를 지낸다.
마지막 답사지 흥암서원(興巖書院) 으로 이동하였다.









 
3.흥암서원(興巖書院)
흥암서원은 1702년(숙종 28) 동춘당 송준길(宋浚吉)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하여 창건하고 그 위패를 모신 서원으로 경북기념물 제61호이다
소재지 경상북도 상주시 연원1길 34이다     
송준길(1606∼1672)은 조선 후기 문신이며 뛰어난 학문과 바른 행실로 추천을 받아 관직에 올랐다. 김장생의 가르침을 받은 성리학자로서 특히 예학에 밝았다.
흥암서원(興巖書院)은 숙종 28년(1702)에 세웠으며 숙종 42년(1716)에 임금으로부터 이름을 받아 사액서원(賜額書院)이 되었다.
경내 건물로는 흥암사, 진수당, 집의재, 의인재, 어필비각 등이 있다.
위패가 있는 흥암사는 앞면 3칸·옆면 3칸 규모로,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사람 인(人)자 모양과 비슷한 맞배지붕이다. 강당 구실을 하던 진수당은 앞면 5칸·옆면 3칸 규모이며,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으로 꾸몄다. 집의재와 의인재는 학생들의 기숙사로 사용하던 곳이다. 어필비각 안에는 숙종이 지어준 ‘흥암서원’이라 새긴 비가 있다.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에도 폐쇄되지 않고 남은 47개 서원 중 하나이다.
점심시간이 되어 해설사가 안내한 식당에서 식사를 마치고 행사장인 상주시 체육관으로 이동하였다




























4.제42차 박약회 유교문화 학술발표회
행사장에 도착하니 전국에서 모여든 천여 명의 박약회 회원들이 접수를 하는 중이다.
행사장 안으로 들어가니 제42차 박약회 학술대회 식전행사로 상주향교 국악반의  국악한마당을 펼치고 있었다.

 
행사장 뒤편 상단에 『상주 새로운 천년의 중심에 서다』라는 현수막과 『存心愛物 在愛院 精神 되살려 大同社會 만들자』 라는 현수막이 걸려 있고 그리고 정면에는 『博約精神 되살려서 道德社會 具現』하자라는 캐치프레이즈가 새겨져 있다.
참고로 存心愛物이란 본심을 지키고 길러 남을 사랑한다는 뜻이다.
 의전행사는 개회선언에 이어 국민의례, 내빈소개, 효행상수여, 이용태 회장의 대회사, 도지사 환영사, 축사 순으로 이어졌으며  학술 강연은 ∇송재소 교수 「선비정신의 현대적 구현」,
∇금중현 상주향교 전교「상주 전통씨족의 혼맥과 세거」 , ∇곽희선 향토문화연구소장 우리나라 최초의 사설의료원인 「상주 존애원」 순으로 학술발표를 하였다.
행사를 모두 마치고 일천 여명의 유림들이 체육관 앞에 마련한 식사를 마치고 오후7시20분에 진주에  귀가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