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1.2.퇴임기념 세 번째 가을 답사
<구례군 피아골 연곡사. 하동군 화개면 칠불사>
雨堂(이충련), 毅庵(박형제), 內憲(조권제) 雲山(안수중) 넷이서 올 봄3월에 퇴임기념 두 번째 답사를 전남 화순군과 담양군 문화유산을 찾아 1박2일간 다녀왔다
이번 여행은 퇴임 기념 세 번째 문화유산 답사이다.
기해년 11월 가을 단풍구경을 피아골로 정하고 아침 8시에 개양오거리에서 집결하여 하동국도를 따라 구례군 피아골 단풍을 찾아 출발하였다.
피아골 입구에 들어서니 제43회 피아골 단풍축제가 11월2일~3일 까지 축제가 시작된다는 현수막이 걸려 있다.
9시20분에 제43회 피아골 단풍 축제장에 도착 하였다. 축제장 까지는 자가용이 갈 수 있으나 여기서 부터는 차를 주차하고 세틀버스로 연곡사 앞까지 이동시켜준다. 연곡사에 온지는 참 오래 되었다.
연곡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19교구 본사인 화엄사(華嚴寺)의 말사이다
지리산(智異山) 연곡사(鷰谷寺)는 백제 성왕 22년 (서기544년)에 인도의 고승인 연기조사(緣起祖師)가 창건한 사찰이다. 연기조사가 처음 절의 터를 잡을 적에 이곳에 큰 연못이 있어 물이 소용돌이치며 제비들이 노는 것을 보고 연곡사라 이름 하였다 한다.
통일 신라 말에서 고려 초기에 선종 사찰로 번성하였고 도선 국사(道詵國師), 현각선사(玄覺禪師) 등 많은 고승 대덕이 배출되었다.
조선시대 임진왜란 당시 연곡사 스님들이 승병활동을 했던 보복으로 왜군에 의해 완전 전소되었으나 임란 이후 소요태능스님이 중창 불사를 하여 400여 스님들과 더불어 이곳에 총림을 개설하고 선풍을 일으켰다.
1907년 연곡사가 항일의병의 근거지라는 이유로 다시 일본군에 의해 완전 전소되었고 1950년 6.25전쟁으로 또 다시 전소되는 수난을 겪었다.
현재 국보로 지정된 동승탑(東僧塔:국보53호), 북승탑(北僧塔:국보54호) 과 보물로 지정된 삼층석탑(보물151호), 현각선사탑비(玄覺禪師塔碑:보물 152호), 동승탑비(東僧塔碑:보물 154호), 소요대사탑(逍遙大師塔:보물 154호)등의 석조물만이 유적으로 남아 전해오고 있으며 1980년대 이후 중흥불사가 이루어지고 있다.
일주문을 들어서니 양 기둥에 『歷千劫而不古 恆萬歲以長今』이라
『일천 겁을 지나도 예가(옛날) 아니며, 일만 세를 뻗쳐도 언제나 지금이다』라는 글이 쓰여 있다. 다음은 천왕문(天王門)을 들어서니 양편에 네 천왕이 아래로 내려 보면서 사악한 자는 들어가지 못하도록 주시하는 것 같다. 올해는 사찰 입구부터 국화를 많이 전시해두어 더욱 아름다워 보인다. 대웅전은 없고 대적광전(大寂光殿)이 있다.
안에 들어가 바로자나불 앞에서 삼배를 올리면서 소원을 빌었다. 대적광전 뒤편으로 올라가니 국보 동승 탑이 있다. 600여m 더 올라가면 국보 북승탑이 있다. 승탑의 정교한 조각에 정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옆으로 내려오니 보물 4점이 있다. 오늘 국보 2점, 보물4점을 답사하였는데 화재로 인하여 두 번이나 전소되어도 현재까지 잘 보존되어 있었다.
이곳에는 국가보훈처지정 현충시설도 있다.
고광순(1848~1907)의병장 순국지이다. 1907년 10월 고광순 의병장이 일본군과 맞서 싸우다가 순국한 곳이다.
다시 일주문으로 나와 피아골 붉은 단풍을 보면서 흐르는 맑은 계곡물소리와 산새소리를 들으면서 서서히 이동하였다.
마지막 까지 가니 마을이 형성되어 있다.
안내판을 보니 피아골 지명 유래를 소개해두었는데 연곡사에 수백 명의 승려가 머물러 수행하던 시절 식량이 부족하게 되자 척박한 토양에서도 잘 자라는 오곡중 하나인 피(기장)를 많이 심어 “피밭골”이라 불리던 것이 점차 변화되어 “피아골”로 불리게 되었고 이곳 마을은 피직(稷), 밭전(田)을 써서 직전(稷田)이라고 부르고 있다.
피아골 단풍은 지리산 10경중 하나로 가을 지리산 풍경의 백미로 꼽힌다.
조선시대 대학자 남명 조식(1501~1572)은 “피아골 단풍을 보지 않은 사람은 단풍을 보았다 할 수 없다”라며 유명한 삼홍소(三紅沼)시를 남겼다.
「흰 구름 맑은 내는 골골이 잠겼는데 가을에 붉은 단풍 봄꽃보다 고와라
천공(天公)이 나를 향해 묏빛을 꾸몄으니, 산도 붉고 물도 붉고 사람조차 붉어라」
여기 까지 갔다 다시 내려와 세틀 버스로 축제장 까지 내려왔다. 점심시간이 다가와 화개장터에서 식사를 하고 다시 화개면에서 대성 골로 가다 칠불사로 올라갔다.
칠불사는 몇 번 답사한 사찰이다. 위치는 경상남도 하동군 화개면 범왕리에 있는 가락국 사찰이다.
지리산 토끼봉의 해발고도 830m 지점에 있는 사찰로, 101년 가락국 김수로왕의 일곱 왕자가 이곳에 암자를 짓고 수행하다가 103년 8월 보름날 밤에 성불했다는 전설이 전해지는 곳이다.
지리산 최고의 심산유곡에 자리 잡아 수많은 고승을 배출하였으나, 1800년 큰 화재가 나서 보광전, 약사전, 신선당, 벽안당, 미타전, 칠불상각, 보설루, 요사 등 10여 동의 건물이 불탔다가 복구되었다. 1948년 여수·순천사건을 거쳐 6·25전쟁 중 다시 불탄 뒤 1978년에 복구하여 지금의 칠불사가 되었다.
운공선사가 축조한 벽안당 아자방(亞字房)은 세계건축대사전에 기록되어 있을 만큼 독특한 양식으로, 서산대사가 좌선한 곳이자 1828(조선 순조 28) 대은선사가 율종을 수립한 곳으로 유명하다.
아자방은 신라 때 금관가야에서 온 구들도사 담공선사가 만든 온돌방으로, 방안 네 귀퉁이에 70cm씩 높인 곳이 좌선처(坐禪處)이며, 가운데 십자 모양의 낮은 곳이 행경처(行經處)이다. 한번 불을 지피면 49일 동안 온기가 가시지 않았다고 하며, 100명이 한꺼번에 좌선할 수 있는 방으로, 건축 이래 한 번도 보수한 적이 없다.
일곱 왕자를 성불시킨 보옥선사는 거문고의 명인이었으며, 신라 경덕왕 때는 옥보고가 입산해 50년간 30곡의 거문고곡을 지었다고 한다.
현재 아자방은 대한민국국가문화재 승격을 위하여 아자방을 발굴조사 중이라 들어갈 수 없다. 라는 안내문이 쓰여 있다. 東國第一禪院, 大雄殿, 普說樓, 圓音閣, 文殊殿, 設禪堂을 답사하고 주변 단풍도 아름다워 떠날 수 가 없었다.
조금 내려와 일주문 앞에서 智異山 七佛寺 현판 사진을 남기고 진주로 돌아오니 4시30분이다. 오늘 종일 운행을 한 이충련 교장께 감사하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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