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1.法聖寺. 孤雲湖. 雲寂寺. 孤雲庵 답사
아침에 毅庵(朴亨濟)선생으로부터 오늘 무얼 하고 있느냐? 청학동 법성사에 한번 갑시다. 라는 연락을 받고 요즘 건강도 좋지 않고 해서 신선한 청학동 기를 받기 위해 쾌히 승낙하고 떠날 준비를 하였다. 지금은 겨울이라 시야가 확실히 잘 보이며 시천면 내대를 거처 산청~하동간 터널을 조금 지나 우측으로 가면 법성사가 보인다. 지금은 그동안 사찰을 많이 증축하여 이제 멀리서도 뚜렷이 건물이 보이며 2년 동안 많은 중건을 하였다. 특히 이 사찰은 의암이 직접 대웅전 현판글을 썼다. 『應供福田』 글의 내용을 잘 몰라 인터넷으로 찾아보니 아라한존자, 대승경전 봉안 도량이다.「깨달은 사람 (응공. 아라한)에 대한 공경」이라는 의미 이다. 그리고 이 응공복전의 글로 이루어져 있는 신륵사 죽로지실 주련에 이런 글이 있다.
應供福田(응공복전) 깨달은 이를 공경하고
恩威竝行(은위병행) 베풂과 위엄을 더불어 행하며
受囑擁護(수촉옹호) 부축을 받아(삼보를)지켜 보호하며
普度含靈(보도함령) 널리 중생을 제도하라
오늘따라 사찰에 도착하니 스님이 출타중이고 풍경(風磬)소리만 바람에 스쳐 사찰을 지키고 있다. 2년 전에 왔을 때와는 달리 건물을 많이 세워 이제 사찰 규모가 아주 웅장하게 보인다. 들어가는 대문에는 2층으로 건물을 세워 입구부터 사찰의 위압감이 느껴진다. 의암과 함께 사찰 내를 답사하고 다시 돌아 나와 고운 호로 이동하였다.
고운 호는 여러 번 왔지만 의암과 함께 오기는 처음이다. 고운 호가 생기기 전에는 저 아래쪽 반천이라는 마을에서부터 계곡을 따라 올라가는데 이 고운 호가 생기기 전에 정호군, 전상선선생과 같이 답사를 한 적이 있었다. 지금은 정말 상전벽해(桑田碧海)라고 할까 상부 댐이 생겨 상부에서 물이 낙차를 하여 내대 입구 양수발전소에서 전력을 생산하고 있다. 양수발전소가 생기므로 해서 그렇게도 반대했던 내대, 거림 주민들도 이제는 아주 편리한 문화생활과 교통도로도 많이 개선하여 살기 좋은 부자 마을이 되었다. 고운호(孤雲湖)는 최치원선생이 피리를 불며 소요하던 곳으로 통일신라시대를 풍미했던 유학자 고운(孤雲) 최치원(崔致遠)선생의 호에서 따왔다고 한다. 거대한 바위에 새긴 고운 호 한문 초서는 于玄 閔性洙씨 글씨라고 새겨져 있다. 이 고운호가 완성된 것은 1995.2~2001.11(6년10개월)간으로 총사업비 6,244억원이 소요되었다. 준공일은 2001년 10월28일이다. 댐높이*댐길이는 91m*360m이다.
고운 호를 뒤로하고 이곳 고운 동에서 제일 높은 위치에 있는 사찰 운적사(雲寂寺)로 이동하였다. 제일 높은 위치 삼신봉 줄기 아래 운적사 大寂光殿을 초서로 쓴 현판이 있다. 그리고 그 옆에는 아담한 연못을 만든 곳에 해수관음 보살상을 건립하여 고운 호를 내려다보고 있다. 이 사찰의 특징은 사찰 내에 수석과 조경한 나무 들이 모두 하나하나의 예술 작품이다. 주지 스님께서 하신지 모르지만 나무 하나하나가 모두 자연그대로의 나무가 아니고 인공적으로 만든 나무들이다. 그리고 정원 양 옆에는 동서 삼층석탑을 세웠는데 바위 자체를 지대석으로 하고 삼층석탑을 만들고 그리고 옥개석의 수는 신라시대와 같이 5개 이상 만들었다. 최근에 만들면서 옥개석의 수를 많이 하는 이유를 잘 모르겠다. 이러한 것도 스님이 계셨으면 한번 문의를 하여 의문을 풀었으면 좋았을 텐데 스님이 안 계셔서 알 수 없었다.
운적사(雲寂寺)를 뒤로 하고 다시 돌아 나와 고운호 제일 끝자락, 청학동에서 산을 넘어오면 제일 첫 사찰인 대한불교조계종 지리상 고운암(孤雲庵)에 들어갔다. 이곳 고운 암도 역시 스님이 안게시고 고요한 사찰 내를 둘러보고 나왔다. 돌아 올 때는 왔던 길로 가지 않고 횡천면으로 내려갔다. 횡천에서 청학동까지의 거리는 28km이다. 걸어서 간다면 하루 종일 걸릴 시간이다. 묵계초등학교를 지나 한참 내려가니 하동댐이 나온다. 하동댐을 지나 청암면에 도착하여 점심을 먹기로 하고 식당을 찾아보니 하동솔잎 청학동 한우촌(055-882-5854)에 들어갔다. 청학동 돼지갈비와 된장 찌개를 맛있게 먹었다. 의암은 이곳 사람들과 인연이 많은가 보다. 젊은 시절에 수석을 좋아할 때 청학동 까지 와서 마을 마다 들려 수석을 구경하고 또 사가기도 했다고 한다. 그래서 그때 인연을 맺었던 사람들의 이름을 지금도 기억하면서 식당 주인에게 안부를 묻기에 아! 대단하다고 생각하였다. 오늘 하루는 의암이 나를 위해 많은 봉사를 하였다. 정말 감사하게 생각한다. 식사 후 횡천으로 내려와 횡천에서 진주~광양 고속도로를 올리니 아주 가까운 거리로 진주의 집까지 무사히 도착하였다. 오늘 하루 여러 사찰을 답사한 사진을 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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