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유적답사

'21.3.13. 통영문화재 답사(세병관, 충렬사)

雲山- 2021. 3. 13. 21:18

‘21.3.13.통영 문화재답사

<세병관, 충렬사>

아침 1040雲山(安守中), 準堂(柳辰熙). 瑞東(鄭一錫), 毅菴(朴亨濟) 넷이서 나의 차로

진주에서 출발 국도를 따라 사천, 고성을 지나 통영도산면 휴게소에서 잠시 쉬었다.

주유도 하고 세병관으로 가면서 식사 시간이 다 되어 통영시 중앙시장에 주차를 하였다.

시장에 들려 봄이 왔으니 간단히 약주를 일배 하면서 봄 도다리 쑥국으로 점심을 하였다.

식사 후 다시 왔던 길로 세병관으로 이동하였다. 주차장에 이르니 만 차가 되어 세병관으로 올라가니 옆에 빈자리가 있어 주차하고 함께 세병관으로 이동하였다.

나는 3년 전에 우리가족이 이곳에 왔던 기억이 난다. 제일먼저 눈에 와 닿는 건물이 있다.

망일루(望日樓)와 수항루(受降樓)이다. 망일루는 일명 세병문 이라고도 하며 통행금지와 해제를 알리는 커다란 종이 있어 종루라고도 한다. 그리고 수항루(受降樓)는 이층누각으로 통영성 남문 밖에 위치했는데 임진왜란의 승전을 길이 기념하기위하여 숙종3(1677)건립 되었으며 봄가을 군점(수조) 때에 모의 왜병으로부터 항복 받는 행사를 하는 곳이다.

망일 루를 지나 몇 계단을 오르면 오제봉 선생이 쓴 지과문(止戈門)이 있다. 지과문은 창을 거둔다, 즉 전쟁을 끝낸다는 뜻이다.

지과문(止戈門)을 지나면 웅장한 세병관이 우리를 진압하는 느낌이 든다.

세병관(洗兵館)은 국보 제305호로 200210.14에 지정되었다. 세병관은 통제영의 객사(客舍)로 제6대 통제사 이경준(李慶濬)이 이곳에 통제영을 옮겨온 이듬해인 1605년에 처음 세웠다. 35대 통제사 김응해(金應海)1646년 규모를 크게 하여 다시 지었으며, 194대 통제사 채동건(蔡東健)1872년에 다시 고쳐 지은 것이다.

정면9칸 측면5칸의 9량 구조 단층 팔각집으로 경복궁, 경회루, 여수 진 남관 과 더불어 지금 남아 있는 조선시대 건축물 가운데 바닥 면적이 가장 넓은 건물 중 하나이다. 장대석 기단, 50개의 민흘림기둥, 2익공 양식에 벽체나 창호도 없이 통칸으로 트여 있으며, 질박하면서도 웅장한 위용이 통제영의 기상을 잘 나타나고 있다. 건물은 전체적으로 우물마루에 연등천장을 시설한 것이나 안쪽의 중앙3칸만은 한단을 올려 전패단(殿牌壇)을 만들고 상부를 소란반자로 꾸민 후 3면에 분합문을 두어 위계를 달리하였다. 세병이란 만하세병(挽河洗兵)에서 따온 말로 은하수를 끌어와 병기를 씻는다.는 뜻이다. 세병관이라 크게 써서 걸어놓은 현판은 제137대 통제사인 서유대(徐有大)가 쓴 글씨다. 참고로 통제사가 많은데 모두 208명이라고 충렬사 연구사 이충실 선생이 말해준다.

세병관 우편으로 가면 통영군의 모든 비석을 한곳에 모아두었다. 이곳에 가니 마침 충렬사 연구사 이충실 선생이 계셔 우리들에게 비석의 글씨를 잘 설명하여 주신다.

평범한 사람이라면 별로 관심을 갖지 않았을 텐데 내가 물어보니 비석에 관하여 많은 연구를 하고 있는 분이셨다.

설명을 듣고 내려와 다시 충렬사로 이동하여 충렬사 주차장에 주차하고 조금 아래로 걸어서 충렬사에 도착하였다.

 

충렬사(忠烈祠)도 나는 몇 년 전에 이곳을 들린 적이 있다. 통영충렬사는 사적 제230호이다

임진왜란이 끝난 8년 후 (1606) 왕명에 의해 건립된 충무공 이순신의 신위를 모신 사당으로 삼도수군 통제영에서 관리 하였으며, . 추 향사를 모시던 곳이다. 전국에 47개소를 제외한 모든 서원과 사당을 철폐하게 한 서원철폐령에도 이순신 사당중 유일하게 철폐되지 않았고 일제 강점기에도 존속된 정통 사당이다.

안내소에 기록하고 들어서니 400년이 넘은 오래된 동백나무가 우람하게 꽃을 만발하게 피어 있어 더욱 충렬사의 역사와 함께 함을 알았다.

충렬사당을 가려면 강한루(江漢樓)를 지나야 한다. 강한루는 1840(현종6)건립하였다. 172대 통제사 이승권이 건립하고 강한루(江漢樓)라 현판을 걸고 누각 이면에는 영모문(永慕門)이라 현판을 걸었다. 다시 올라가니 동재 주련이 있었는데 그중 두 주련 글을 보면

서해어룡동(誓海魚龍動): 바다에 맹서하니 물고기와 용이 감동하고

맹산초목지(盟山草木知): 산에 맹세하니 초목이 알아준다. 는 주련이 있다.

드디어 사당에 도착하여 느낀 소감을 방명록에 기록하고 이순신장군의 영정 앞에서 묵념을 하였다.

그리고 사당 문 양편에는 다음 글이 쓰여 있다.

욕일보천(浴日補天): 해를 씻고 하늘을 메우다

맹산서해(盟山誓海): 산과 바다에 맹세 한다는 두 글이 있다.

사당을 뒤로 하고 내려오면 태산목 두 그루가 사당 출입문 양쪽에 웅장하게 자라고 있는데 그 태산목에 붙어사는 고란초가 기이(奇異)하다. 충렬사를 뒤로 하고 산양읍을 한 바퀴 돌면서 전망대에서 통영 앞바다를 바라보니 많은 어선과 정기여객선이 지나가는 모습이 너무 아름답고 수많은 국립해상공원 섬들이 눈 아래 다 전망된다. 돌아올 때는 대전- 통영 고속도로를 따라

진주에 무사히 귀가 했다. 오늘은 비록 전에 답사한 적이 있지만 영웅 이순신 장군의 역사가 살아 숨 쉬는 현장을 다시 찾게 되어 감개무량함을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