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산

'19.06.06.경주 남산(468m) 문화유산 답사

雲山- 2019. 6. 7. 10:22

'19.06.06.경주 남산(468m) 문화유산 답사
 오늘은 2/4분기 꼬맹이 산행일이다. 아침7시10분 진주에서 집결하여 승합차 2대에 승차하여 경주로 출발하였다. 회원8명중 이번에는 6명이 참석하였다.
참석한 회원은 雨堂(이충련), 毅菴(박형제), 김종수, 김영철, 박옥자 이다. 차량 제공은 나와 雨堂(이충련)회장이 오늘 하루 수고를 하였다. 진영휴게소에서 잠시 휴식 후 휴게소 위쪽 오른편으로 기장으로 가는 새 도로를 따라가니 양산, 언양, 경주 활천TG로 나가야 하는데 깜박 놓쳐 경주 TG 들어가니 조금 지나 오른쪽으로 1,2km근처에서 김영철 부부는 수술한지 얼마 되지 않아 산행은 못하고 해서 포석정에 내려 여기서 답사를 하고 삼릉과 삼불사를 답사하였다.
 우리4명은 서 남산 주차장에 주차하고 간단한 먹을거리를 준비하여 산행을 준비하는데 김종수 사장도 무릅 수술로 인해 산행을 중단하고 삼릉과 경애왕릉 답사를 하였다.
3명이 출발하는데 나는 이곳을 3번째 오른다. 의암은 처음이고 우당은 이번이 두 번째라고 한다.
아무튼 이곳 산은 그리 높지도 않아 산행도 의미가 있지만 오늘 목적은 산행보다는 신라 천년의 살아 숨 쉬고 있는 경주남산 야외 박물관을 답사하면서 천년을 거슬러 올라가 그때를 상상하면서 오르기 시작했다.    
 제일 먼저 만나는 것은 삼릉이다. 삼릉은 내려오면서 답사하기로 하고 삼릉 옆으로 오르면 나무 데크 길이 이어진다. 처음 만나는 것은 탑조각 불상조각이다. 조금 더 오르면 머리 없는 석불좌상이 앉아계신다. 계곡에 묻혀있었으나 1964년 발견되어 지금의 장소에 옮겨놓은 것이라 한다. 8세기중엽 신라 전성기의 불상이라고 한다. 머리 부분을 찾을 수 없을까? 정말 아쉽기도 하다.

다음 문화재는 유형문화재 제21호 삼릉계곡선각육존불 (三陵溪谷線刻六尊佛) 이다.
 자연 암벽의 동서 양벽에 각각 마애삼존상을 선으로 조각한 6존상으로, 그 조각수법이 정교하고 우수하여 우리나라 선각마애불 중에서는 으뜸가는 작품으로 꼽히고 있다.
오른쪽 삼존상의 본존은 석가여래좌상이며, 그 좌우의 협시보살상은 온화한 표정으로 연꽃을 밟고 본존을 향하여 서 있다. 왼쪽 삼존상의 본존 역시 석가여래로서 입상이며, 양쪽의 협시보살상은 연꽃무늬 대좌 위에 무릎을 꿇고 본존을 향해 공양하는 자세이다.

 대체로 통일신라시대로 추정되며, 오른쪽 암벽의 정상에는 당시 이들 불상을 보존하기 위해 법당을 세웠던 흔적이 남아 있다.


조금 더 오르면 외편에 보물 666호인 삼릉계 석조여래좌상이 있다
그냥 지날 뻔했는데 옆으로 조그만 계곡을 지나 오르면 아주 뚜렷한 석조여래좌상이 있다
경주 남산 삼릉계 석조여래좌상 (慶州 南山 三陵溪 石造如來坐像) 주소는 경상북도 경주시 배동 산 72-6  이다. 
머리에는 작은 소라 모양의 머리칼을 붙여 놓았으며 정수리 부근에는 큼직한 상투 모양의 머리(육계)가 자리 잡고 있다. 얼굴은 원만하고 둥글며, 두 귀는 짧게 표현되었다. 왼쪽 어깨에만 걸쳐 입은 옷의 옷 주름선은 간결하고 아름답게 표현되었다. 허리는 가늘고 앉은 자세는 안정감이 있다. 대좌(臺座)는 상·중·하대로 구성되었는데, 상대에는 화려한 연꽃무늬를 조각하였으며, 8각 중대석은 각 면에 간략하게 눈모양의 안상(眼象)을 조각하였다. 하대는 단순한 8각대 석으로 되어 있다. 8∼9세기에 만들어진 통일신라시대의 작품으로 보인다.
 여기서 조금 오르면 상선암에서 울려 퍼지는 스님의 독경소리가 들인다. 많은 등산인 들이 스님의 염불 소리에 불국토의 세계로 들어온 마음을 갖는다.  스님의 염불소리를 들으면서 정상으로 올라갔다.
















마치 정상 같이 보이는데 정상은 아직 멀었다. 오늘 날씨도 무덥고 하여 산행하기는 무척 어렵다. 조금 지나 상선암위에 있는 우형문화재 158호인 삼릉계곡 마애석가여래좌상 보인다. 전에 왔을 때는 직접 갔었는데 요즘은 막아 올라갈 수 없고 반대편 능선에서 보인다. 카메라 줌을 당겨 촬영을 하였다.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158호인 삼릉계곡마애석가여래좌상 (三陵溪谷磨崖石迦如來坐像) 의 주소는 경북 경주시 남산순환로 341-126 (배동) 이다.
경상북도 경주시 배동의 거대한 자연 바위벽에 새긴 앉아 있는 모습의 석가여래불로 높이는 6m이다.
몸을 약간 뒤로 젖히고 있으며, 반쯤 뜬 눈은 속세의 중생을 굽어 살펴보는 것 같다. 머리에서 어깨까지는 입체감 있게 깊게 새겨서 돋보이게 한 반면 몸체는 아주 얕게 새겼다.
전체적인 양식으로 보아 통일신라 후기에 유행하던 양식의 마애불로 추정된다.
조금 더 가면 상사바위와 소석불이 있다.

   
이곳은 그냥 지나칠 수 있는 곳으로 잘 보이지 않는다.
상선암 뒤편에 높이 솟아있는 남산신 상심이 살고 있는 바위로 많은 사람들이 아들 낳기를 기도하는데 명험이 있다고 한다. 1856년에 새긴 산신당이라는 명문이 남아 있다. 상사바위 앞 공간도 옛 절터이다. 여기서 금오산 정상 까지는 15분 걸린다.
  땀을 많이 흘리면서 계속 오르니 드디어 정상이 나타났다. 표시판에 금오산(金鰲山468m) 기록되어 있다.
옆에는 남산과 망산의 유래가 기록되어 있다. 물론 믿을 수는 없지만 그 유래는 다음과 같다.

     
경주의 이름은 서라벌(徐羅伐)라 했으며 동이 터서 솟아오른 햇님이 가장 먼저 비춰주는 광명에 찬 땅의 뜻이다. 어느 날 경주에 두 신(神)인 남신과 여신이 찾아 왔다. 이 마을 아가씨가 빨래를 하던 중에 두 남신과 여신이 걸어오는 것을 보고 겁에 질려 “산 봐라”하고 소리치고 그만 혼절하였다. 두신이 깜짝 놀라 그 자리에서 발을 멈췄는데 그만 발을 움직을 수 없어 굳어져 산이 되어버렸다고 한다. 남신은 기암괴석이 많은 남산(南山)이 되었고, 여신은 서쪽에 솟아있는 포근한 망산(望山)이 되었다고 한다는 전설이 기록되어 있다.














































여기서 사진을 촬영하고 다시 하산하였다. 정상 조금아래서 가져간 빵과 막걸리를 마시고 조금 피로를 풀었다. 오르는 시간은 2시간이지만 내려 갈 때는 1시간 정도면 갈수 있다. 한참 내려가다 상선암으로 올라올 때 가는 길과 삼불사로 내려가는 갈림길에서 나는 삼불사로 내려갔다.
가다 보니 문화재는 거의 없고 마사토로 등산로가 무척 미끄럽다 .
드디어 삼불사에 도착했는데 이곳에서 보물 제63호인 경주 배동 석조여래삼존입상 (慶州 拜洞 石造如來三尊立像) 답사하게 되어 이곳으로 하산한 것이 참 잘 되었구나했다.
위치는 경북 경주시 내남면 용장리 65-1번지이다.
중앙의 본존불은 머리에 상투 모양의 머리(육계)가 있는데, 특이하게도 이중으로 되어 있으며, 표면이 매끄럽게 표현되었다. 어린아이 표정의 네모난 얼굴은 풍만하며, 둥근 눈썹, 아래로 뜬 눈, 다문 입, 깊이 파인 보조개, 살찐 뺨 등을 통하여 온화하고 자비로운 불성(佛性)을 표현하고 있다. 목이 표현되지 않은 원통형의 체구에 손을 큼직하게 조각하였는데, 왼손은 내리고 오른손은 올리고 있다. 묵직해 보이는 옷은 불상을 전체적으로 강직해 보이게 하지만, 어린아이 같은 표정과 체구 등으로 오히려 따뜻한 생명을 실감나게 표현하고 있다.
왼쪽의 보살은 머리에 보관을 쓰고 만면에 미소를 띠고 있으며, 가는 허리를 뒤틀고 있어 입체감이 나타난다. 오른손은 가슴에 대고 왼손은 내려 보병(寶甁)을 잡고 있는데, 보관에 새겨진 작은 부처와 더불어 이 보살이 관음보살임을 알 수 있게 해준다. 오른쪽의 보살 역시 잔잔한 내면의 미소를 묘사하고 있는데, 무겁게 처리된 신체는 굵은 목걸이와 구슬장식으로 발목까지 치장하였다.
조각솜씨가 뛰어난 다정한 얼굴과 몸 등에서 인간적인 정감이 넘치면서도 함부로 범할 수 없는 종교적 신비가 풍기고 있는 작품으로 7세기 신라 불상조각의 대표작으로 평가된다.


 보물을 답사하고 삼불사 사찰경내를  답사하고 시간이 없어 부처님께 절도 하지 못하고 돌아 나왔다.
바로 옆에 또 사찰이 있어 들어가 보니 문 위에 망월사(望月寺) 현판이 있다. 이 사찰은 인적이 없고 아주 조용하다. 다시 나와 여기서 옆으로 삼릉으로 가는 안내판이 있어 조금 걸어가니 아침10시 10분에 처음 남산으로 오를 때 제일 먼저 만난 사적 제219호 경주 배동 삼릉 (慶州 拜洞 三陵) 이다. 위치는 경북 경주시 배동 73-1번지이다.

   
경주 배동 삼릉은 경주 남산의 서쪽 기슭에 동서로 3개의 왕릉이 나란히 있어 붙여진 이름으로, 밑으로부터 신라 8대 아달라왕, 53대 신덕왕, 54대 경명왕 등 박씨 3왕의 무덤이라 전하고 있다. 무덤은 모두 원형으로 흙을 쌓아올린 형태를 하고 있다.
경주 배동 삼릉의 주인공이 신라의 박씨 3왕이라 전하고 있지만 확실한 기록은 없고 신라 초기의 아달라왕과 신덕왕, 경명왕 사이에는 무려 700여년의 차이가 있어 이들의 무덤이 한곳에 모여 있다는 사실은 받아들이기 어렵다. 또한 신라 초기에는 이와 같은 대형무덤 자체가 존재하지 않았었다.
이곳에서 옆으로 조그만 계곡을 지나면 신라55대 경애왕의 무덤이 있는데 나는 답사하지 못하고 하산하였다.
4명이 함께 만나 포석정 앞 삼미정순두부식당에서 점심식사를 하면서 경주 동동주를 마시니 오늘 하루의 피로가 가신다. 영철 부부도 함께 와서 차를 마시고 진주로 출발하였다.
마침 우당이 추천한 군북IC로 나와 명문가든(583-2088.2050) 영양돌솥밥전문집에서 저녁식사를 하고 여기서 우당과 헤어지고 우리는 진주까지 무사히 귀가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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