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4.30. 부처님 오신 날
< 아름다운 가림원. 운흥사. 백천사. 금선암>
오늘은 불기2564주년 부처님 오신 날이다.
毅庵(朴亨濟) 과 함께 삼천포 가림원 사찰에 가자고 연락이 왔다. 2년 전인가 한번 같이 갔지만 거리가 멀 고하여 연등을 달지 않고 그냥 돌아와 죄송했다. 오늘은 연등을 달도록 하고 종무소에 들려 미리 작성한 나의 가족이름을 쓴 것을 주었다. 그리고 대웅전에 들어가 부처님께 삼배를 올리고 나오니 스님께서 식사를 하라는 연락을 한다.
오늘은 간단한 뷰페식으로 하기에 담아서 안쪽 방으로 들어가서 의암과 단 둘이서 식사를 하였다.
스님께서 친절히 우리를 대한다. 의암은 스님과 잘 아는 사이라 가끔씩 이 사찰을 찾는다.
그런데 사찰을 창업한지 얼마 안 되어 아직 많은 준비를 해야 한다. 스님께서 우리에게 선물을 주어 감사하게 생각하면서 손목에 끼우고 이 염주에 쓰인 글이 무엇입니까 물으니 「옴마니 반메홈」이라 한다. 무슨 뜻인지 물어야 하는데 폰 인터넷으로 알아보니 「온 우주(Om)에 충만하여 있는 지혜(mani)와 자비(padme)가 지상의 모든 존재(hum)에게 그대로 실현될지어다.」라 쓰여 있어 오늘 처음으로 알았다.
스님께 하직 인사를 드리고 가까운 운흥사로 이동하였다.
운 흥사(雲興寺)는 부처님 오신 날 행사를 전국 코로나19로 인하여 한 달 뒤 5월30일에 한다고 한다. 대체로 사찰 내는 조용한 편이다. 운 흥사 역사를 알아보니
고성의 동쪽 하이면 와룡리 마을길 끝에 못을 지나 산봉우리들이 둘러싼 향로봉(579m) 중턱에 고적한 분위기의 운 흥사(雲興寺)가 자리 잡고 있다.
신라 문무왕 16년(676) 의상대사가 창건했다. 임진왜란 때 이 지역 승병의 본거지였다고 한다. 사명대사의 지휘 아래 6,000여 명이 운 흥사에 머물렀으며, 충무공 이순신이 수륙 양면작전 논의 차 세 번 방문하였다고 한다. 한꺼번에 6,000여 명의 승병이 운집해 있었고, 당시에는 천진 암과 약사 암을 포함해 아홉 군데의 암자가 있었다고 하니, 절의 규모가 작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사찰은 임란 때 병화로 소실된 것을 효종 2년(1651)에 중창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운 흥사는 임란 때 국난 극복을 위해 왜적과 싸우다 숨진 호국영령의 넋을 기리기 위한 영산 제를 숙종 때부터 지금까지 매년 음력 2월 8일에 지내고 있다. 임진왜란사의 기록에 의하면 전쟁 중 이날 가장 많은 승군이 전사했다고 한다.
임란 후에 운 흥사는 불가의 화원 양성소로 이름을 날렸으며, 마침내 영조 때 불화를 잘 그리기로 이름난 의겸(義謙) 스님을 배출하였다.
최근 운 흥사는 대웅전 앞에 높은 축대를 쌓고 마당을 넓혔으며 주차장도 크게 만들고 절 출입의 편리를 위해 제법 큰 길을 내는 공사를 하였다
주차장에 주차하고 바로 앞에 일주문이 세워져 있다. 일주문으로 들어가 계단을 오르니 웅장한 보제루(普濟樓: 널리 구제한다는 의미) 건물이 있다.
다시 올라가니 대웅전이 나온다. 들어가 부처님께 삼배를 하고 정중하게 나왔다. 다시 올라가니 산신각, 그리고 사찰건물을 다시 복원 수리 중에 있다. 내가 젊었을 때 이 사찰 뒤편 옆길로 향로봉에 등산도 한 기억이 난다. 다시 내려오니 일주문이 있다. 올라 갈 때 뒷면을 보지 못했는데 일주문 뒷면에는 「불이문(不二門)」글이 새겨져 있다.
‘불이’는 진리 그 자체를 달리 표현한 말로, 본래 진리는 둘이 아님을 뜻한다. 일체에 두루 평등한 불교의 진리가 이 불이문을 통하여 재조명되며, 이 문을 통해야만 진리의 세계인 불 국토(佛國土)가 전개됨을 의미한다.
운 흥사를 뒤로하고 백천사로 이동하였다.
백천사(百泉寺)는 내가 여러 번 답사하였지만 최근에는 가지 못하여 많이 변모 했다는 보도를 통해 대충 알았지만 오늘 가보니 정말 대가람 사찰이다.
역시 이곳 사찰도 연등불사는 받지만 전국 코로나19로 인하여 행사는 5월30일에 한다고 한다.
백천사(百泉寺) 는 경상남도 사천시 백천동 와룡산(799m) 기슭에 있는 사찰이다.
팔만구암자가 있었다고 전해지는 와룡산 기슭에 있다. 신라 문무왕(663년) 때 의선대사가 창건한 사찰로, 임진왜란 때에는 승군(僧軍)의 주둔지였다고 한다. 옛 모습은 전혀 남아 있지 않으며 현재의 모습은 현대에 와서 새로 만들어진 것이다. 약사와불전에 있는 길이 13m,높이 4m의 목조와불로 유명한데, 와불의 몸속에 작은 법당이 있다. 대웅전, 약사와불전, 산령각, 용왕각, 요사 등으로 구성되며, 절의 외부에는 약사여래좌불이 있다. 납골당 시설인 극락전 추모 관을 비롯해 오방여래불 소원기원탑, 금종, 포대화상, 산신할미상 등 각종 조형물이 있다.
더욱 경악한 것은 일반 신자들의 사리를 모신 부도, 그리고 멀리서도 보이는 웅장한 건물위에 제일 높은 위치에 부처님입상을 조각한 만덕전 무량수불 이 우람하게 느껴진다.
몇 년 전에 와불에 들렸을 때 부처님께 절을 하니 보살님이 시주를 하라고 하여 그때는 드렸지만 시주는 자기 마음에서 울어나 해야 하는데 기분이 별로 안 좋았다. 오늘은 그냥 앞을 지나면서 과연 동양최대의 와불(臥佛)다운 느낌을 받았다. 그 옆 오른쪽에는 소가 두 마리가 있는데 이 소는 이상하게도 목탁소리를 내고 있어 더욱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백천사 사찰 내를 대충 답사하고 주차장 옆에 있는 백천사 유물 박물관이 있어 들어갔다.
이곳에 있는 문화재는 우리나라 전국 문화재 중에 주로 보물 국보들이다. 실물은 아이고 모조품이지만 가보지 못하고 보지 못한 전국 문화재를 잠시나마 접견했다는 것에 긍지를 느낀다.
중앙국립 박물관에 소재하고 있는 보물 1547호 금동관음보살좌상(해남대흥사). 백제금동대향료 국보287(부여국립박물관). 화남하사창동 철조석가여래좌상 보물 287호(국립중앙박물관),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 국보83호(국립중앙박물관), 경주 천마총 금관, 을 볼 수 있었다.
백천사를 뒤로 하고 雨堂(李忠鍊)교장 대한불교 법화종 금선암 사찰에 들렸다.
미리 전화를 하고 가니 마침 집에 계신다. 대웅전에 들어가 삼배하고 나와 자기 방에 들어가 커피한잔을 마시면서 이곳 사찰도 석가 탄신일 행사를 한 달 연기한다고 한다. 오늘 4사찰을 다니면서 부처님의 가피(加被)를 받으면서 우리 가정 가족들이 무탈하고 건강한 삶을 누리도록 부처님께 빌고 가벼운 마음으로 집으로 돌아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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