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유적답사

‘21.8.17. 청곡사 답사

雲山- 2021. 8. 17. 15:03

‘21.8.17. 청곡사 답사

오늘은 1140분에 雲山(安守中), 準堂(柳辰熙). 瑞東(鄭一錫), 毅菴(朴亨濟) 넷이서 나의 차로 가까운 곳에 점심을 하기위해 금산 못 주변 미성가든(055-761-0707)에서 점심 식사를 하고 돌아오면서 청곡사에 들리자고 하여 오후 2시경 도착하였다.

청곡사

청곡사는 여러 번 답사해도 또 가고 싶은 사찰이다.

대한불교조계종 제12교구본사인 해인사(海印寺)의 말사이다. 879(헌강왕 5) 도선국사(道詵國師)가 창건하였는데, 월아산 남쪽 남강 변으로 청학(靑鶴)이 날아오니 서기(瑞氣)가 충만하므로 이 자리에다 절을 지었다고 한다.

1380(우왕 6) 실상사(實相寺)의 상총(尙聰)이 중건하였으며, 조선시대에는 선종(禪宗)에 속하였다. 임진왜란 때 완전히 소실되었던 것을 1602(선조 35)에 계행(戒行)과 극명(克明)이 중건하였고, 1612(광해군 4) 대웅전을 중건하였으며, 2008년에 성보박물관을 건립하고 2017년에 선불장을 복원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현존하는 당우로는 대웅전을 비롯하여 업경전·보광전·나한전·선불장·적묵당·설선당·칠성각·응향각·환학루·성보박물관 등이 있다.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51호인 대웅전 안에는 보물 제1688호 목조석가여래삼존좌상과 후불탱화로서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349호 영산회상도(靈山會上圖)가 봉안되어 있다. 나한전 뒤편에는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5호 삼층석탑이 있는데 도선 국사의 창건 당시에 건립된 것이라 전하며, 신라 말의 양식이 뚜렷한 작품이다. 다른 사찰의 명부전에 해당하는 업경전은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139호로서 내부에는 보물 제1689호 목조지장보살삼존상과 시왕상이 봉안되어 있다.

국립중앙박물관에는 범자(梵字)를 넣고 하부에 연판(蓮瓣)을 새겼으며, 모란당초(牡丹唐草)를 전면에 은으로 입사(入糸)한 향로(香爐)가 있다. 원래 이 절의 보광명전(普光明殿)에 있었던 것으로 1397(태조 6)에 제조된 것이다. 진양출신인 신덕왕후(神德王后)가 태조의 왕비가 된 것을 기리기 위하여 상총이 이 절에 머물면서 대장경(大藏經)을 인성(印成)하였는데, 이에 김사행(金師幸) 등이 동조하여 이 향로를 만들었다고 한다.

 

주차 후 먼저 김덕령(金德齡)장군 전적지기념비 앞에서 묵념하였다.

김덕령장군은 임진왜란 때 월아 산에서 목책을 만들어 왜적을 물리친 의병대장이다. 장군 전적 비를 지나 청곡사 학영지(鶴影池)를 지나면서 사진을 남겼다. 이어서 일주문을 지나면서 은초 정명수 선생이 섰다는 일주문 현판 월아산 청곡사과 양쪽 기둥에 쓰인 글을 다시 기억하고 싶어 적었다.

歷千劫而不古(역천겁이불고)亘萬歲而長今(긍만세이장금)이라 이라 일천 겁을 지나도 예가(옛날) 아니며, 일만 세를 뻗쳐도 언제나 지금이다.

조금 지나면 역대 스님의 부도를 지나 방학교(訪鶴橋)를 맞이한다. 학이 청곡사를 찾는다는 의미인 것 같다.

조금 오르면 성파 하동주 선생이 쓴 월아산 청곡사현판을 지나 환학루(喚鶴樓) 건물이 웅장하게 느껴진다. 다시 계단을 오르면 대웅전이 마주친다. 오른쪽에는 지금 건물을 보수중이다. 대웅전 안에는 목조 석가여래 삼존좌상(보물 제 1688)이 있어 나는 부처님께 삼배를 올렸다.

그리고 옆면에는 목조제석천. 대범천의상(보물 1232)가 있다.

대웅전을 나와 업경 전에 들어가 삼배를 올리고 나왔다. 그리고 조금 위편에 올라가면 삼층석탑이 있다. 보통 석탑은 사찰 앞 편에 있는데 이곳 청곡사의 석탑은 뒤편에 있다. 그 이유는 탑 정면 앞산 노적봉우리에 맞추어 먹이가 떨어지지 않도록 탑을 세웠다.

마지막으로 성보박물관을 답사하려 했으나 오늘은 문을 열지 않고 있다.

 

 

국보 302호 영산회괘불탱화

석가가 설법하는 장면인 영산회 상도를 그린 괘불이다. 괘불이란 절에서 큰 법회나 의식을 행하기 위해 법당 앞뜰에 걸어놓고 예배를 드리는 대형 불교그림을 말한다.

길이 10.4m, 6.4m 크기의 이 괘불은 본존불인 석가를 중심으로 양옆에 문수보살과 보현보살이 배치되어 있다. 화면 중심에 꽉 차게 배치되어 있는 석가는 얼굴이 둥글고 원만하며, 예배자의 시선을 의식한 듯 당당하게 표현하였다. 두 어깨를 걸친 옷은 중후하게 묘사하였고, 가슴 중앙에 자를 크게 그려 넣어 눈에 띈다. 옷은 붉은색과 녹색으로 채색하였고 옷깃에도 변화를 주었으며 전면에 걸친 꽃무늬 장식이 밝고 선명해 보인다.

석가 좌우에 있는 문수보살과 보현보살은 연꽃가지를 들고 서 있다. 본존보다 약간 작은 신체, 화려한 보관, 둥근 얼굴, 정면을 향한 자세 등이 매우 당당하고 화려하며 본존 뒤로 물러서게 배치해 원근감을 나타냈다. 청색, 하늘색, 연분홍색 등이 다양하게 나타나고 복잡하고 화려한 꽃무늬와 장신구가 보살을 더욱 돋보이게 한다. 보살의 머리 위에는 석가의 제자인 아난, 가섭을 비롯해 여러 불상이 그려져 있다.

조선 경종 2(1722)에 승려화가인 의겸(義謙) 등이 참여하여 제작된 이 괘불은 석가불, 문수보살·보현보살을 화면 가득 배치한 구도, 당당하고 건장한 체구, 둥글고 원만한 얼굴, 화려하고 밝은 색채와 꽃무늬 장식 등에서 18세기 초반의 불화 가운데 뛰어난 작품으로 평가된다. 석가·문수·보현의 삼존불입상이라는 점에서 예천 용문사의 괘불도와 비교되며, 의겸의 작품 가운데 가장 우수한 작품 중 하나로 여겨져 불교회화 연구에도 귀중한 자료가 되는 매우 가치 있는 작품이다.

오늘 청곡사를 답사하면서 우리의 문화재가 길이 후손에게도 잘 보존하도록 우리 모두가 아끼고 모니터링하면서 사랑해야겠다고 다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