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12.3. 함안군 군북면 문화재 답사
오늘 10시30분경 진주시청 옆에서 毅菴(朴亨濟). 瑞東(鄭一錫) 과 셋이서 군북면에 이태준박사 기념관을 답사하기 위해 출발하였다. 가는 방향에 군북면 명관리에 도천사(道川祠)가 있고 공룡발자국 화석문화재가 있어 먼저 답사하고 가기로 하였다.
도천사는 몇 년 전 강태중 교장과 함께 도천사 향례에 참석한 적이 있어 위치를 알고 안내 하였다. 도천사는 경상남도 유형문화재가 있다. 도천사 앞 표시판에 이휴복 진무공신 교서 (李休復 振武功臣 敎書)내용이 쓰여 있다. 그리고 단서죽백(丹書竹帛)에 대한 소개도 표시판에 안내되어 있다.
도천사 안에는 문이 잠겨 들어 갈 수 없어 지나가는 아주머님에게 물어보니 도천사 옆집에 계시는 종손(宗孫)에게 연락하여 종손이 나와 우리를 친절히 안내를 해주신다.
이곳 도천사(道川祠)에 소장된 공신 임명 문서〔功臣敎書〕는 인조(仁祖) 2년(1624)에 이괄(李适)의 난을 평정한 공으로 삼등(三等) 진무공신(진무공신)에 봉해진 이휴복(李休復, 1568~1624)에게 인조 임금이 내린 것이다. 가로 198cm, 세로 38cm 크기의 비단에 붉은 글씨〔丹書〕로 쓰여 있다. 문서에는 이휴복이 공신이 된 사연과 그에게 내려진 공신의 등급과 품계〔正二品 嘉善大夫〕그리고 토지, 노비 등 상급의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문서의 끝 부분에는 함께 공신이 된 자들의 이름과 등급도 기재되어 있다. 또 문서를 내린 날짜를 적고 그 위에 국왕의 도장〔御印〕을 찍었으며, 뒷면에는 “강석기가 만들고 이무림이 쓰다” (姜碩期製 李茂林書)라고 적어, 제작한 사람과 글씨를 쓴 사람이 누구인지를 밝히고 있다.
공신 임명 문서〔功臣敎書〕는 해당자에게만 발급되는 오직 하나뿐인 교서인 만큼 귀중한 유물이다. 뿐만 아니라 이를 통해 이괄의 난을 평정한 공신들과 그들이 받은 공신 품계와 상급 등을 자세히 알 수 있어 이 사건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자료가 된다. 단서죽백(丹書竹帛)이란 교서의 이름을 말하는 것이 아니고, 교서가 대나무 바탕의 비단〔竹帛〕에 붉은 글씨〔丹書〕로 쓰였기 때문에 붙여진 명칭이다.
종손께서 丹書閣 문을 열어주어 원본은 함안박물관에 보관하였고 이곳에 있는 것은 사본이라고 한다. 이휴복 내외분 신위, 이휴복 진무공신교서, 그리고 교지가 있었다. 단서각 문을 잠그고, 思敬堂, 石坡 흥선대원군(이하응)이 쓴 道川齋 현판, 제일 위에는 祠宇가 있다. 도천사 출입문은 尋緖門 현판이 걸려 있다.
祠宇에는 6분의 위패를 모시고 있다고 한다.
우리를 안내하는 종손은 심서문(尋緖門)을 들어 갈 때는 동편으로 나갈 때는 서편으로 나가도록 안내해 준다.
감사하게 인사를 나누고 다시 여기서 800여m 거리에 있는 문화재자료 화석공룡이 있는 백이산으로 이동하였다. 나는 이곳을 여러 번 다녀왔지만 이 마을 화석 발견자 이영부, 마금자씨 부부집 앞을 지나면서 두 분을 소개한 표시판을 보고 이분들의 문화재 사랑 정신을 깊이 감사하게 생각했다.
차를 저수지 둑에 주차하고 500여m를 걸어가면 산길 주변을 말끔히 정돈하고 꽃무릇을 심고 정성 드려 쌓은 많은 돌탑에 감탄하였다. 이번에 가보니 전과는 달리 많이 변모를 하였다. 공룡화석이 있는 곳 까지 나무계단을 만들었고 공룡화석 발자국에 들어가지 못하도록 막아 잘 보존하고 있었다.
함안 명관리 공룡발자국 (咸安 明館里 恐龍발자국) 은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545호이다. 지정(등록)일은 2012.02.16.이며 위치는 경상남도 함안군 군북면 명관리 618 외 2필지이다.
공룡발자국 화석은 중생대 백악기에 살았던 공룡들의 발자국이다. 지표면 3군데와 큰 전석(굴러온 돌)에 보존되어 있는 공룡발자국 화석은 발자국의 일정한 크기와 규칙적 배열들로 보아 경상분지에서 발견되는 공룡발자국 화석이다.
전체 발자국의 규모는 70여개가 넘게 분포하고 있으며, 2족 보행인 조각류 와 4족 보행인 용악류 발자국이 약 2:1의 비율을 보이며 육식성 수각류 발자국 화석은 보이지 않는다. 공룡발자국 화석이 분포하고 있는 이 지역은 약 1억 년 전 하천의 범람으로 생긴 호수주변을 공룡들이 지나 다니면서 발자국의 흔적을 남긴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여기 까지 왔으니 백이, 숙제 산을 등반하고 싶었으나 산행 준비기 안 되어 다시 하산하여 군북면 옛 기차역 역사에 세운 이태준기념관을 답사하려고 군북면소재지로 이동하였다.
점심시간이 되어 양평식당에서 식사를 하고 이태준 기념관으로 가니 코로나가 갑자기 확산되므로 오늘부터 임시 휴무였다.
그래서 뒤편에 이태준 박사 동상에 가서 박사님의 약력 및 허권수 교수가 지은 이태준박사에 대한 설명을 보았다. 그리고 기념관 뒤편에 「함안군 독립공원」 표시석이 우뚝 서 있다.
주변을 잘 조성하였는데 「핑크뮬리」꽃밭 과 옛 기관차를 이곳에 남겨두었다. 지금은 철로가 다른 곳으로 이동하였기에 추억을 기억하기 위한 것 같다.
다시 可谷堂이 있는 수곡 마을로 이동하였다. 가곡당은 심연(沈漣)을 말하며 청송인 으로 자는 自源이고 호가 가곡당(可谷堂)이다. 司馬試에 入格하여 학문은 정통하고 깊었으나 벼슬에 뜻이 없어 己卯士禍로 함안군 군북면 수곡(늪실)에서 조용히 은거하며 心書를 펴내기도 했다.
다음 시는 안관 선조께서 가곡당에게 쓴 시이다.
『 賜 可谷堂 (가곡당 심연에게 시를 지어주다)
聚友亭 安灌 撰
惟君經學素驚人(유군경학소경인) 오직 그대는 경서에 진실로 뛰어난 인물로서
出世何難澤此民(출세하난택차민) 혜택을 입은 백성들을 두고 어찌 떠날 수 있으랴
奸小構言賢路阻(간소구언현로조) 간사한 소인배들은 말을꾸며 어진 이의 길을 막으니
空令谷口送其身(공령곡구송기신) 부질없이 늪실(藪谷)에서 허송세월만 보내는 구나』
이시는 전 취우정 一中 종회장께서 가곡당 대문위에 걸려있는 것을 발견한 것인데 지금은 대문은 없어지고 可谷堂이라는 새 건물을 중건하여 시를 찾을 수가 없었다.
(위 시문은 聚友亭先生實記 三刊 531p에 있다.)
관리자가 없어 可谷堂을 뒤로 하고 지수면에 있는 관란정(觀瀾亭) 앞 염창(溓滄)나루터 표시판 옆에 차를 주차하였다.
염창 나루는 진주시와 의령군을 잇는 중요한 길목으로 경관이 매우 아름다운 곳이다. 염창나루는 남강을 건너면 의령으로 가고 동북쪽 진치(津峙)를 넘으면 함안 군북으로 삼거리에 위치한 내륙 교통의 요충지이다. 벼랑위에는 관란정이 있다.
관란정(觀瀾亭)은 허국주(許國株) 선생께서 700여명의 의병을 모아 진주성 전투에 의병활동의 근거지로 호국정신이 깃든 나루터이다.
오늘 문화재 답사는 관란정을 끝으로 집으로 오는 중에 雨堂(李忠鍊)을 만나 반성에서 저녁식사를 하고 귀가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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