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03.03.복자 정안토니오 성지 와 우곡정 답사
오늘 점심 시간에 毅菴과 雨堂을 만나 반성 신포 물회 집에서 점심식사를 하였다.
여기 까지 왔으니 복자 정안토니오 선생 성지와 우곡정을 답사하기로 하였다.
몇 년 전 이곳에 왔는데 그때는 학생들의 문화유적 답사교육을 위해 문산 성당에 와서 성당 시설 및 역사를 배우고 이곳 순교자 정찬문 안토니오 성지를 답사하였는데 의암과 우당은 이곳에 처음이라 안내를 하였다.
복자라는 이름은 가톨릭교회에서 신앙생활의 모범으로 공적 공경을 받는 사람에게 주는 존칭 또는 그 존칭을 받은 사람을 말한다.
순교자 정찬문은 정온(鄭溫)의 후손으로 순조 22년 (1822년) 사봉면 무촌리 중촌 마을에서 부친 정서곤 과 모친 울산 김씨의 외아들로 태어났다. 정찬문은 칠원 윤씨 집으로 장가를 들었는데 처가는 천주교 집안이었다. 그의 나이41세 때인 1863년 부인의 권유로 입교하여 이후3년 동안 수계하였다. 1866년 병인박애가 일어난 때 진주포교에 잡히게 된다. 모진 고문을 받고 회유를 강요당했으나 배교하거나 다른 천주교인을 밀고하지 않았다. 45세 되던 음력 12월20일 진주영장(晉州營將)의 집행으로 참수형을 당한다. 그는 진주 지방의 첫 순교자가 되었다.
순교자 정찬문 (안토니오)의 조성된 무덤과 그 주변 성지를 답사하고 다시 나와 정온선생 우곡정(隅谷亭)으로 이동하였다.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진주 우곡정 (隅谷亭)
소재지는 경남 진주시 사봉면 사곡리이다.
우곡정은 고려 말 대사헌을 지냈던 우곡 정온(鄭溫)이 조선 태조의 역성혁명에 반대하여 고향으로 돌아와 조용히 지내고자 태조 2년(1393)에 지은 정자이다. 그 뒤 헌종 15년(1849)에 고쳐 짓고, 1976에 다시 수리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정온은 두 임금을 섬길 수 없다는 불사이군(不事二君)의 충절을 지켜 은둔생활을 하였다. 태조가 사위인 이제를 보내 모셔가려고 하자 차마 왕의 명을 거역할 수 없어, 겉보기에는 멀쩡해도 앞을 보지 못하는 장님(靑盲)이라는 핑계를 대고 사양하였다. 이에 사실을 확인하고자 솔잎으로 눈을 찌르니 눈동자는 움직이지 않고 선혈만 낭자하였다고 전한다. 정문 위에는 節義門이라는 현판이 있는데 이 글씨는 해위(海葦) 윤보선 대통령의 글씨이다.
대문 밖 앞뜰에는 낚시하던 연못이 예전의 모습대로 보존하고 있다.
앞쪽에 정온선생의 절개를 높이 선양한 큰 암석에 글씨가 있다.
이한문서체를 해설한 것이 다음과 같다.
우정감고(隅亭感古)
『하나의 충신이 되기보다 일만 번 죽는 것이 쉽다고 하건만
강상을 붙들던 그날 그 누구 함께하는 이 있었던가.
사리 판단이 밝아 국가의 위기가 닥칠 때를 먼저 내다보았고
굳센 절개로 나라의 정사가 어지러움 속에 있음을 능히 알았도다.
동산의 솔잎은 예리한 바늘 되어 눈동자를 찔렀고
연못 앞 배롱나무의 붉은 마음은 화살을 맞았도다.
여기 오르니 효행의 감동이 구름처럼 피어올라 그 공을 계승함에
내 성의 없음을 부끄러워하노라.』
2006년 5월 후손 세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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