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유적답사

‘22.05.12. 남해군 문화유산 답사

雲山- 2022. 5. 12. 20:14

      ‘22.05.12. 남해군 문화유산 답사

 

 오늘 아침 雨堂(李忠鍊)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모처럼 바닷가 유람을 하면 좋겠다고 하여 毅菴(朴亨濟)을 연락 하여 함께 1030분경에 진주를 출발 남해군으로 이동하였다.

사천을 지나 삼천포 창선을 연결하는 우리나라 제일의 대교와 대교위로 오고가는 케이블카, 아름다운 남해안의 명승지 풍광을 즐기면서 지족~창선 교각을 지나 미조면에 도착하니 점심시간이 되어 요즘 멸치회 와 멸치쌈밥이 일미라 탁주 일배로 맛잇게 점심 식사(진어식당)를 하였다.

식사 후 미조 어판장 앞으로 가니 멸치를 무수히 쌓아 두었다.

그리고 앞으로는 많은 어선이 정착해있고 멀리 둘레길을 만들어 오는 14~15일 양일간 멸치 축제 준비에 분주하다.

우리들은 미조 어항을 뒤로하고 주차장 옆 미조리의 상록수림(천연기념물 제29)을 답사하였다.

남해 미조리 상록수림 (南海 彌助里 常綠樹林)은 사계절 내내 잎이 푸른 나무로 우거진 숲을 뜻한다. 남해 미조리 상록수림은 마을 앞 바닷가 언덕의 경사면에 암벽이 노출되는 것을 막기 위해 만들어졌다. 지금은 바다 바람을 막아 주는 역할과, 물고기가 살기에 알맞은 환경을 만들어 물고기 떼를 유인하는 역할도 하고 있다.

이곳은 지역 내 대표적인 상록수림이었기 때문에 1962년 천연기념물 제29호로 지정되었으나 현재는 상록수뿐만 아니라 낙엽 활엽수도 많이 자라고 있다. 숲의 가장 윗부분은 낙엽 활엽수인 느티나무와 팽나무 등이 있고 그 아래쪽에는 상록수인 후박나무, 육박나무, 생달나무 등이 있다. 이처럼 다양한 식물이 자라고 있어 이 숲은 식물학 연구에서 중요한 가치를 지닌다. 숲이 울창해지면 마을에 뛰어난 인재가 나온다는 전설까지 있어 현재까지 잘 보호하고 있다.

미조리의 상록수림은 강한 바닷바람을 막아주는 방풍림의 기능과 물고기가 서식하는데 알맞은 환경을 제공하여 물고기 떼를 유인하는 어부림의 구실도 하고 있으므로 천연기념물로 지정·보호하고 있다.

상록수림을 뒤로 하고 이동면방향으로 오는 도중 무민사가 있다.

 

무민사(武愍祠)의 소재지는 경남 남해군 미조면 미조리539-3번지 이다.

건축연대는 1960(경자년)이며 향례일자는 음 413일 이다.

이곳은 고려 말의 명장 최영(1317~1389)장군을 모신 사당이다.

최영장군은 왜구 체복사(倭寇體覆使) 및 해사도통(海師都統)으로서 서남 해안에 침입하는 왜구를 크게 무찔렀던 장군으로서 위화도 회군 이후 이성계의 역성혁명을 반대했던 고려의 충신이다. 조선조 성종 때에 이르러 장군의 호국 전공과 충의심을 현양하기 위해 이곳에 사당을 마련한 것이 이 문민사의 시초이다. 1954년에 최영장군 유적 보존회를 결성하고 이 사당을 다시 세우는 한편 1978년에 이곳을 정화 하였다.

이 사적지를 아직 까지 문화재로 등록하지 않은 것이 이상히 여겨진다. 남해군에서는 문화재청에 건의하여 문화재로서의 등록 절차를 거쳤으면 좋겠다.

 

문민사를 뒤로하고 남해 명산 금산아래 송정학생수련원 그리고 은빛 모래 상림 해수욕장을 지나면서 남해군 보물섬 다운 절경을 보면서 이동면에서 다시 창선면 바닷가로 이동하였다. 바닷가로 가는 길은 나는 처음이다.

의암께서 가다보면 아름다운 섬이며 특히 천연기념물 왕 후박나무가 있다는 말을 듣고 그곳으로 이동하였다. 차를 도로 옆에 세워두고 위에서 보니 정말 감탄하였다. 우람하고 하나의 나무가 큰 산을 형성한 것처럼 보인다.

 

천연기념물 남해 창선도 왕후박나무 (南海 昌善島 王厚朴나무)의 소재는 경남 남해군 창선면 대벽리 669-1번지 8필이다.

왕 후박나무는 녹나무과의 늘푸른나무인 후박나무의 변종으로, 후박나무보다 잎이 더 넓다. 뿌리를 깊게 뻗는 성질이 있고 해안가에서 잘 자라서 바람을 막기 위해 주로 심는다.

남해 창선도 왕 후박나무는 높이가 9.5m이고, 밑동에서부터 가지가 11개로 갈라져 있으며, 나이는 500년 이상 된 것으로 추정한다. 전해 오는 이야기에 따르면, 이 마을에 살던 늙은 부부가 커다란 물고기를 잡았는데 물고기의 배 안에 씨앗이 들어 있었다고 한다. 이를 이상하게 여긴 부부가 이 씨앗을 땅에 뿌렸더니 지금의 왕 후박나무로 자랐다고 한다. 임진왜란 때 이순신(李舜臣) 장군이 이 나무 밑에서 쉬어 갔다고 하여 이순신 나무라고도 불린다.

오랜 세월 조상들의 관심과 보살핌 가운데 살아온 나무로 여러 면에서 보존 가치가 높다. 마을 사람들은 이 나무를 신성하게 여겨 해마다 나무 앞에서 마을이 평안해지고 물고기가 많이 잡히기를 기원하는 제사를 지내고 있다.

남해 창선도의 왕 후박나무는 오랜 세월동안 조상들의 관심과 보살핌 가운데 살아온 나무로 민속적·문화적·생물학적 보존가치가 높아 천연기념물로 지정하였다.

왕 후박나무를 뒤로 하고 삼천포~창선대교를 지나 진주에 무사히 귀가하였다.

오는 차량봉사는 우당 교장께서 수고 하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