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유적답사

‘22.11.29. 진주향교 유도회 문화유적 답사< 도동서원. 송해공원. 남평문씨 세거지 인흥마을>

雲山- 2022. 11. 30. 12:18

‘22.11.29. 진주향교 유도회  문화유적 답사

< 도동서원. 송해공원. 남평문씨 세거지 인흥마을>

 

 매년 향교에서 실시해온 유도회 회원 문화유적 답사가 코로나-19 인하여 3년 만에 처음으로 실시하였다.

아침 8시에 시외버스주차장, 대곡면 방면, 반성면 방향에서 120명이 버스3대로 출발 하였다.

경남도청 서부청사에 집결하여 인원 점검을 한 후 허종철 유도회 회장, 박종식 전교님, 진주시청 관계공무원께서 인사말이 있었다.

9시에 오늘 목적지 도동 서원으로 출발하였다.

 1030분경에 도동서원에 도착하니 아직 비가 그치지 않아 조금 불편하기도 하였다.

이미 연락이 되어 해설사 와 한훤당(寒暄堂) 김굉필(金宏弼) 선생 후손이 나와 안내를 하였다 먼저 사당으로 이동하여 정주택 회원이 헌관이 되어 정중히 분향하고 알묘(謁廟)를 하였다.

환원당 김굉필 선생의 신위에는 증 우의정 문경공 환훤당 김선생(贈 右議政 文敬公 寒喧堂 金先生)이라 쓰여 있다.

사당 내부 양쪽 벽 위에는 400여 년 전의 벽화가 아직 뚜렷이 남아 있으며 분향을 마치고 다시 강당으로 내려와 이곳 해설사의 설명을 들었다.

해설사 께서는 각 지역 마다 차이점이 있는데 사당을 출입을 할 때는 진주에서는 東入, 西出로 하는데 이곳 도동서원에서는 東入, 東出로 하며, 집사 분정에서 掌儀執禮의 역을 맡고 있다고 전 한다

 

도동서원은 1605(선조38) 지방 유림에서 한훤당 김굉필선생을 추모하기 위하여 세운 서원으로 조선중기 전학후묘(前學後廟)의 전형적 배치형식과 강당과 사당의 공포양식 및 담장 구성수법 등에서 건축적 특성을 보여주고 있다.

강당·사당과 이에 딸린 담장은 보물로 지정되어 있으며, 서원 전면에 위치한 신도비, 은행나무 등을 포함한 서원 전역을 국가지정문화재 사적으로 지정하여 보존·관리하고 있다.

그리고 우리나라 서원중에서 2019769개 서원이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 되었는데

9개 서원이름은 다음과 같다.

소수서원(영주), 남계서원(함양), 옥산서원(경주), 도산서원(안동), 필암서원(장성), 도동서원(달성), 병산서원(안동), 무성서원(정읍), 돈암서원(논산)이다.

 

 도동서원을 뒤로하고 송해 공원으로 이동하여 공원 위편에 있는 계령갈치식당(053-616-6248)에서 점심식사를 하였다

식사를 마치고 바로 앞에 있는 옥연지 송해공원 전시관과 공원 둘레길 을 따라 약 1시간가량 거닐어 보니 이곳이 대구시의 명소가 되었음을 알았다.

 

전시관으로 들어가 명인대상 방송인 송해 선생의 흉상을 보니 전 국민을 항상 기쁨으로 이끌어 주신 선생이 그리워진다.

선생의 일생이 담긴 유물인 유공훈장이며, 세계최고령 MC 기네스북 등재 증명서(2022.4.12.), 전국노래자랑 진행사진, 등 이 전시되었다.

 

선생은 한국전쟁의 비극으로 유랑이 시작되었는데 1950123일 엉겁결에 오른 피난길이 영원한 이별이 되었다, 23세 송해는 해주 음악학교 성악 과에서 학업도중 한국전쟁이 터지자 1.4 후퇴로 어머니 잠시 또 피했다가 오겠습니다라고 하고 마지막 인사가 영원이 남북으로 분단되어 한만은 유랑 생활이 시작되었다.

마음이 쓸쓸하면서도 송해 공원이 대구 명소가 됨으로써 전국 많은 관광객이 몰려 올 것으로 예상된다.

송해 공원을 뒤로하고 오늘 마지막 답사지인 인흥마을 남평문씨 고택으로 이동하였다.

 

대구광역시 달성군 민속 문화재 로 지정된 남평 문씨 본리 세거지 (南平文氏本里世居地)가 있는 주차장에 주차하고 내려 보니 몇 년 전에 이곳에 답사한곳이다. 그 당시는 묵익점 선생의 동상이 없었는데 지금은 이곳에 우람하게 조각상을 건립하였다. 우리 회원들은 이곳에서 단체 사진을 남겼다.

 

이곳은 고려 말의 충신이며 원나라로부터 목화씨를 가져와 우리나라 의복문화에 혁신을 가져온 문익점의 18세손인 문경호가 1840년을 전후하여 터를 잡아 남평 문씨 일족이 모여 살던 곳이다. 원래 인흥사의 절터였던 곳을 구획하여 집터와 도로를 반듯하게 정리하고 집을 지었다.

 

현재 아홉 가구의 살림집과 수봉정사, 광거당, 인수문고 등이 한울 속에 정연하게 자리 잡고 있는데, 풍치 있는 토담으로 둘러싸인 부지 안에 총 70여 채의 전통와가가 들어서 있다.

수봉정사는 세거지의 입구에 있는 정자로 정원을 매우 아름답게 꾸민 곳이다. 주로 손님을 맞고 일족의 모임을 열 때 사용하던 큰 규모의 건물이다. 광거당은 문중의 자제들이 학문과 교양을 쌓던 수양장소이다. 또 인수문고는 문중의 서고로, 규장각 도서를 포함한 책 1만여 권을 소장하고 있다. 처음에는 작은 규모였으나 후에 크게 늘려지었고, 도서열람을 위한 건물도 따로 지어놓았다.

광거당에 들어서면 건물 오른쪽 누마루 편액에 추사의 글씨로 수석노태지관(壽石老苔池館) ‘:수석과 묵은 이끼와 연못이 있는 집 란 뜻을 담고 있다.

문익점 선생의 동상 뒤편에는 많은 목화를 재배하여 지금은 수확을 해야 할 시기가 조금 지난 것 같다.

이 목화는 이제는 너무나 귀하므로 어릴 때 많이 열매를 따먹었던 시절이 그립기도하다.

선생께서 원나라에서 가져온 씨앗이 우리 국민의 의복을 혁신시킨 계기가 되므로 이 종자는 영원이 보존되어야 한다고 생각된다. 나는 집에서 관상용으로 기르고 싶어 목화 몇 송이를 따왔다. 인흥마을 대구시 민속 문화재를 뒤로하고 진주로 오면서 차내에서 개인소개와 함께 조용히 노래와 성독으로 모처럼 시간을 즐겁게 보냈다.

군북면 명문 가든(583-2050)에서 저녁식사를 하고 무사히 귀가 하였다. 오늘 유적답사를 위해 안내서 및 음료수 등 많은 준비를 하신 관계자 여러분께 감사를 드린다.